005
지난주에 썼던 걸 다시 쓰게 돼서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ㅠㅠㅠㅠ
공미포 3284자, 단어수 1017
먼지가 코를 간질였다.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손가락으로 차갑고 딱딱하고 매끄러운 느낌이 전해졌다. 평평한 시멘트 바닥의 느낌이었다. 영민은 눈을 떴다. 석면으로 된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와 형광등이 달빛에 어슴푸레하니 비쳤다. 커다란 창문과 기둥엔 촌스럽게 걸린 시계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로는 책걸상이 한쪽으로 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영민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후두부가 찡하니 울렸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가격했던 것 같았다.
“일어났네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셀카봉을 빌려준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쪽을 보자 사람들이 달빛이 닿지 않는 뒷문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말투는 퍽 다정했지만 역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예. 그런데 웬 학교죠?”
영민이 물었다. 영민의 말대로 여긴 학교이자 교실이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칠판과 그 위를 장식하는 태극기와 급훈, 그 앞에 선 교단이 보였다.
“그때 쓰러져서 잘 모르겠지? 좀 오다보니 다시 정상적인 길이 나오더라고. 근데 여기 길도 이상한 게 아무리 가도 표지판도 하나 없고 온통 가정집들뿐이어서, 학교가 보이길래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일단 들어와 봤지.”
“네... 그런데 사람이 좀 모자라는 것 같은데, 버스는 밖에 있나요?”
그가 묻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참담한 얼굴을 한 20대 여자가 대답했다.
“우리가 여기 살피는 사이에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님... 댁이랑 우리 짐을 전부 운동장에 내팽개치고 도망갔어요.”
“네? 왜요?”
“글쎄요, 왜일까요.”
그녀는 피로감을 담아 한숨을 쉬며 말하곤 끌어안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영민도 황망해져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명 문을 닫으라고 외쳤던 사업가 풍의 50대 남성과 키가 크고 깡마른, 새까만 직모가 인상적인 30대 여성과 셀카봉을 빌려줬던 직장인 풍모의 20대 여성, 목이 짧고 전반적으로 근육이 조금 과하다 싶게 발달한 사각 턱의 20대 남성, 그리고 자신의 통로 건너 옆 좌석에 앉았던 남학생도 보였다. 책상을 밀쳐놓은 곳엔 여러 개의 가방과 캐리어가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남학생의 은색 캐리어가 독보적으로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자신의 검은색 가방도 포개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영민은 ‘그’를 찾았다. 있었다면 단연 눈에 띄었을 터였다. 발권기에서 나머지 좌석 전체를 샀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 사람들을 버리고 버스를 타고 도망쳤을까? 영민은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그리고 영민은 외따로 앉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들과 함께 앉길 권하지 않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외국인’을 찾았던 것도 ‘그’라면 자신과 함께 소외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였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땐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동생의 죽음 때 실체를 드러냈던 그 개를, 타인의 죽음에서 또다시 실체를 드러낸 그 개를 쫓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는 그 개가 잃어버린 동생에게로 자신을 이끌어 주었듯, 이번에도 자신들을 이끌어줄 것이라 믿었던 것일까?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20대 여성만이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 우리 자기 소개나 할까요?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됐는데 이름이라도 압시다.”
‘사업가’가 말했다. 영민은 그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조금 다가갔다.
“거... 그럼 일단 우리 이쁜 아가씨부터 들어봅시다. 핸드폰 치우고.”
그는 20대 여성을 보고 말했다. 20대 여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저 이쁜 아가씨 아니고요. 이미정입니다. 회사원이고요.”
그녀는 그렇게 자기 소개를 끝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그녀가 더 소개를 하지 않자 옆에서 20대 남성이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스물 일곱요.”
“저보다 누나네요! 저는 스물 여섯인데!”
20대 여성-이미정은 노골적으로 그의 질문을 탐탁지않아 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인해입니다. 스물 여섯이고 헬스 트레이너임다. 잠시 볼일이 있어 고향에 가는 중이었어요. 혹시 운동 하실 일 생기면 언제든지 물어보십쇼. 아, 정발산에서 일하는 중이니까,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언제든 찾아오세요.”
그는 헤실 웃었다. 얇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얗고 고른 이가 드러났다.
“어, 나는 최진호, 52살이고, 조그만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요. 사업상의 일로 지방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사고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하,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도 여러분과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 믿음직한 오...오인해 군도 있고... 아, 이름이 뭐죠?”
‘사업가’ 최진호가 영민에게 물었다. 영민은 짤막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박영민입니다. 33살이고 회사원입니다.”
“응, 박영민 씨도 있고 여기 믿음직하고 아리따운 여성분들도 있으니 문제 없으리라 믿어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장인 미정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거의 최진호가 말할 때마다 노골적으로 불만의 제스처를 취했다. 영민이 보기에 조금 공격적인 의사 표현이긴 했지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업가 최진호의 말 곳곳엔 차별적인 시선이 드러나 있었다. 최진호 스스로 자신을 무리의 리더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그랬다.
“정혜윤이에요.”
이어서 깡마른 30대 초반의 여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만 말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의 인상은 조금 특이했다. 미정이 사무직 직장인의 인상이 강해 보이는 반면 혜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주부처럼도 보였고 프리랜서처럼도, 사업가처럼도 보였다. 무직자처럼도 보였다. 다만 검디 검은 머리칼을 우울하게 늘어뜨리고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자, 학생은 이름이 뭐야?”
50대 사업가 최진호가 학생에게 물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연신 팔을 쓸어내렸다.
“한... 한준회예요. ...열여덟 살이에요.”
“그래, 학생, 어디 학교 다니나?”
“학생이면 됐지 학교가 뭐가 중요해요?”
“누나, 물어볼 수도 있지 왜 그래요?”
진호의 질문에 학생-준회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미정은 그를 감싸듯 투덜거렸다. 트레이너-인해가 진호를 감쌌고, 진호는 질문을 덧붙였다.
“그리고 학생이 이 밤에 왜 혼자 심야 버스를 탔어? 엄마는 없어?”
준회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봤지만 이번엔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 제사를... 제사를 지내야 해서요. 엄마...아빠가 이혼하셨거든요.”
준회의 대답에 진호는 “아, 그래, 고생이 많네.”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영민은 준회를 봤다. 계속 준회에 동생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의 연령 때문인지 교복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채 피지도 못하고 종결된, 자신이 조금만 더 용감했더라면 구할 수 있었던 사랑했던 이에 대한 이미지가 자꾸 준회에게 덧씌워졌다. 거기에 버스 기사의 죽음이 색깔을 더했다. 그는 점점 더 침침한 이미지가 되어갔다.
“저는 여기 뭐가 있는지 좀 찾아볼게요! 혜윤언니! 저랑 같이 가실래요?”
미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인해가 계속 미정에게 말을 걸었는데, 미정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인해는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자신도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저도 갈게요! 역시 남자가 있어야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아, 그럼 나도 같이 가지.”
진호가 손을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나가서 찾아보지, 뭐. 원래 그러려고 여기 들어온 거 아니었나?”
진호는 아예 몸을 일으켰다. 준회는 혜윤의 눈치를 살폈다. 혜윤은 잠시 준회와 영민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영민 역시 몸을 일으켰다.
“갈래?”
영민이 앉아 있던 준회에게 물었다. 준회는 주춤주춤 그가 내민 손길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복도는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이었다. 중앙현관만이 달빛이 비치고, 그 외에는 모두 어둠이었다. 멀리 끝에서 소방함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밤의 학교는 기묘한 오싹함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씩 핸드폰을 꺼내 조명삼아 불을 켰다. 후방 카메라 플래쉬를 켜는 사람도 있었고 액정의 빛 자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민은 자신의 핸드폰을 켜면서 와이파이는 물론이거니와 데이터는 물론, 위성 신호도 잡히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현재 위치를 핸드폰에 의지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글까지 겸하는 스터디가 좀 부담스럽긴 하네요..
다음주부터 약 2~3주간 글 스터디 쉴게요.. 지금은 글도 그림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서 조금 차분하게 재정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으앙 잘 부탁드립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