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어어어아아아아아아
죄송합니다ㅠㅠ
중앙현관의 탁 트인 공간 양쪽으로 진열장이 놓여 있었다. 한쪽엔 트로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반대쪽엔 분실물들이 있었다.
트로피 위로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학교 건물을 찍은 사진과 교직원들인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열지어 찍은 사진, 교표, 그리고 보라색 꽃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꽃을 찍은 사진 아래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교화: 락스퍼(Larkspur)
꽃말: 정의, 자유
영민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보통 교화의 이름보다 꽃말을 더 강조했던가? 학교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어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선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좋은 말이긴 했다. 다만 학교에서 그 정신이 지켜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트로피를 들여다보던 진호가 말했다.
“이상하네, 트로피 지역이 중구난방이야. 여기 와서 좀 봐봐.”
그러자 분실물 쪽을 살피던 인해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헐, 그렇네요. 분실물 쪽도 도움 될 만한 게 없던데.”
조금 떨어져서 트로피를 함께 살피던 미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선 중앙계단 옆에 세워놓은 괘종시계 앞으로 가 섰다.
“뭔가 적힌 게 있어요?”
혜윤이 물었다. 미정은 고개를 저었다.
영민은 현관 밖으로 나가 휘휘 둘러보았다. 지방의 학교 치곤 비교적 작은 운동장이 창백한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건물 앞 작은 화단엔 나무 몇 그루와 꽃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교문 너머로는 낮은 층수의 건물들이 엿보였다. 2층? 어쩌면 단층일지도 몰랐다. 시선을 거두는 와중에 보인 바퀴자국은 아마도 그들이 타고 온 버스의 흔적일 것이었다. 그외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영민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현관 옆에는 문이 잠긴 방송실, 그리고 그 옆에는 행정실이 있었다. 다행히 행정실 문은 열렸다. 그러나 문제는 행정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파티션이 나뉜 책상들 위에는 각각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파일들이 놓여 있었다. 서류가 잔뜩 쌓여있는 책상도 있었다. 그 책상들 너머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탁자와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고, 그 뒤로 비죽비죽 놓인 캐비닛 사이로 락스퍼 무늬가 얼핏얼핏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해하고 현실감 넘치는 방의 바닥을 작은 벌레떼 같은 것이 새까맣게 차지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를 먹어치웠던 바로 그것들이었다. “벼룩떼 같죠?” 영민은 준회의 말을 떠올렸다. 한없이 작고 가벼운 그것들은 지금은 마치 시체처럼 조용하고 차갑게 바닥에 붙어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다 죽은 거 아닐까요?”
오인해가 말했다.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문 앞에 서서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서류엔 학교의 주소도 적혀있을 터였다. 컴퓨터는 유선으로 인터넷이 연결될지도 몰랐다. 이곳의 지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발을 들일 수 없었다.
“교장실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아쉽네요.”
미정이 말했다. 그녀는 핸드폰의 조명으로 한쪽 벽면 구석에 위치한 문을 비췄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무거워 보이는 문이었다.
“불이라도 켜볼까요?”
영민이 말했으나 다들 질색했다. ‘벼룩떼’들이 반응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행정실의 문을 닫았다.
양호실로 들어가자 커튼이 쳐진 베드 네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뭔가 있는가 싶어 커튼을 열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결벽증적으로 잘 정돈된 베드가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교실이었다면 칠판 위 국기 거는 자리였을 그 위치에 걸린 거미 그림과, 그 아래에 적힌 “학교에서 지켜야 할 수칙”이었다. 수칙은 다음과 같았다.
1. 졸거나 잠을 자지 말 것
2. 떠들지 말 것
3. 뛰어다니지 말 것
4. 불순교제 금지
일행은 잠깐 훑어보고는 각자 단서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수칙이 왜 양호실에 있는지 의아하긴 했지만, 내용이 너무나도 학교다웠기 때문에 별다른 궁금증을 표하지는 않았다. 미정이 잠깐 혀를 찼을 뿐이었다. 진호, 인해는 보건 교사의 책상을 뒤졌고 혜윤은 베드와 커튼을 살펴보았다. 준회는 캐비닛 안의 약품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영민은 거미 그림을 올려다 보았다.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자네도 좀 봐봐.”
진호가 기록부 하나를 영민에게 들이밀었다. 펼쳐보자 학생들의 이름과 그 학생들이 쓴 물품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손으로 쓴 필체로, 어디를 펼쳐도 그런 내용이었다. 영민은 기록부를 덮었다.
“뭐 찾은 거 있어요?”
캐비닛 문을 열어보려 안간힘을 쓰던 미정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수확이 없었다. 그들은 양호실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하죠?”
미정이 입술을 뜯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만큼 뒤져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역시 아침이 올 때까지 잠이나 자두는 게 어때? 날이 밝으면 다니기도 더 좋아질 것 아냐.”
진호가 제안했다.
“아니...”
미정은 뭐라 말하려다 말았다. 다만 초조하게 입술을 손가락으로 뜯을 뿐이었다.
“아까 누나 시계 봤죠? 몇 시였어요?”
인해가 물었다. 그러나 미정은 고개를 저었다.
“시계 멈춘 것 같았어요.”
“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인해는 잠시 휴지를 두었다. 그러고는
“그럼 좀만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요.”
라고 말했지만 미정은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민 역시 그랬다. 이곳은 이상했다. 달빛도 있었고 학교 건물의 현실감도 존재했지만 사고 직후의 적막했던 공간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벼룩떼’라든가, 일행들 이외엔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적막도 그랬다.
“조금만 더 찾아보죠? 찾아봐서 나쁠 거 없잖아요.”
영민이 말하자 곧 양호실로 다시 들어갈 것 같던 진호와 인해가 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엔 피로감이 어려 있었다.
“저기 있던 ‘벼룩떼’들 보셨잖아요. 저런 게 있는 곳에서 함부로 자다간 큰일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냥 앉아있느니 뭐라도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영민의 말에 진호는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인해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가 진호의 얼굴을 보곤 슬그머니 납득하는 낯빛으로 기색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