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한 바퀴 돈 기사는 다시 버스 정면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버스의 헤드라이트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나아가 사라졌다. 기사는 후들후들 앞으로 나아갔다. 이리저리 손전등을 흔들며 걷는 뒷모습을 버스 안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어리둥절한 상황을 기사가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기사가 뭔가를 발견한 듯 어딘가를 비추더니 그곳으로 다가갔다. 뭔가가 들끓는 것이 사람들 눈에도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기사의 다리에 들러붙었다. 기사는 뒷걸음질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 그것들이 기사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것들은 마치 날벌레 같았다. 하나하나는 아주 작았고, 기사의 몸에 붙어 웅웅거리며 진동했고 온몸이 빛나고 있었다. 기사는 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마치 도움을 구하듯 손을 내밀고 버스로 다가왔다. 기사의 목에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찢어졌다. 버스 안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닫아! 닫아!”
중년 남자가 소리치자 20대의 덩치 좋은 남자가 재빨리 운전석 옆에 붙은 스틱을 조작했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며 버스문이 닫혔다.
“잠깐만요, 그래도 구해야죠! 열어요!!”
다소 키가 작고 젊은 여자가 외쳤다. “열면 안돼!!”하고 장년의 여성이 외쳤다.
“그... 소화기! 소화기가 있으면!”
젊은 여자가 외쳤다. 영민은 퍼뜩 주변을 둘러봤다. “저기저기!” 노인이 가리켰다. 영민은 차 안에 비치되어 있던 소화기를 꺼내 들고 버스 앞으로 달려갔다.
“안돼! 열면 우리 다 죽어!”
중년의 여성이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닫으라고 외쳤던 중년의 남자도 영민의 가슴을 밀었다. 영민은 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젊고 덩치가 좋은 남자가 운전석 옆에서 영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여차하면 영민을 제압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승모근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영민은 그를 뚫고 나가지 않고 그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미 버스 앞까지 거의 도착한 그가 마치 모래가 허물어지듯 입자화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미 머리가 무너져 목 위로는 형체도 없었다. 영민이 무리하게 문을 열고 나간다 해도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경악하며 그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사람들은 무겁게 침묵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까 문을 닫으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있어봤자 아무 해결도 안 될 테니 일단 차를 뒤로 뺍시다. 자네가 좀 빼 주게.”
그는 영민을 향해 말했다. 영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운전기사가 있던 자리엔 벌레들의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버스는 웅덩이에서 점점 멀어졌다. 영민은 차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기 피해서 앞으로 가야지.”
중년 남자가 왜 일어서냐는 투로 말했다.
“옷은 남아 있어요. 유품이라도 챙겨가야죠.”
대답하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가 버스 문을 열자 사람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아무 이로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동안 영민은 버스 밖으로 나왔다.
버스의 헤드라이트에 벌레들의 웅덩이가 보였다. 아까보다는 진정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바닥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벼룩떼 같죠?”
어느 새 뒤따라 나온 아까의 고등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영민이 조금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년은 오른손에 든 셀카봉을 들어 보였다.
“아까 문 열라고 한 누나가 빌려줬어요.”
영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서 셀카봉을 받아 들었다. 둘은 조심스럽게 벌레웅덩이로 다가갔다.
마치 옷에서 사람만 사라진 것처럼 옷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벼룩떼들은 그 사이에서 진동하거나 뛰어오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둘은 셀카봉을 최대한 늘려 옷 속으로 그 끝을 집어 넣었다.
이제 됐다 싶어 들어올리자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벌레들은 조금 웅성거리더니 곧 침착해졌다. 그들은 벌레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셔츠를 꺼내왔다.
영민은 셔츠를 벌레들 위에 슬쩍 털었다. 몇 마리 벌레가 떨어졌고, 문제는 없었다. 그는 셔츠를 옆에 있던 학생에게 건냈다. 학생은 셔츠를 깨끗하게 접어 정리했다.
영민은 바지 버클에도 셀카봉을 넣어 살짝 흔들었다. 그는 신중하게 바지를 끌어올려 흔들었고 벌레들이 우수수 빠져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바지는 접혔다.
“구두는 포기하자.”
“네.”
그는 몇 번인가 양말과 구두에 셀카봉을 넣어보려 하다가 포기 선언을 했다. 그들은 몸을 일으키고 버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
영민은 걸음을 멈추고 버스 뒤를 노려보았다. 거기엔 익숙한 파란 눈이 있었다. 길고 검은 털은 어둠 속에 녹아들어 경계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분명 그 개는 예의 그 개였다. 동생의 사고 때 만큼이나 선명한 현실감을 갖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
영민이 중얼거렸다. 개는 버스 뒤로 돌아 사라졌다. 영민은 버스 뒤편으로 뛰었고 소년이 소리쳤다. “버스 앞쪽이에요!” 영민이 돌아보자 개가 버스 앞을 달려가는 모습이 버스 헤드라이트에 비쳤다. 개는 도저히 영민이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버스에 타!”
영민이 소년에게 소리쳤고 본인도 곧 버스에 탔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고 영민에게 물었고, 영민은 개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버스에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었다. 개는 벌써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고, 시야에서 놓치기 전에 빨리 따라잡아야만 했다. 저 개가 그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영민은 그렇게 확신했다.
“억!”
뒤통수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고 영민은 비명을 지르며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크랙션이 시끄럽게 울렸다. 장년의 여성이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20대의 젊은 남자는 영민을 운전석에서 끌어냈다. 과정에서 차가 조금 움직이고 비틀거렸지만 크게 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폭주하는 영민에게서 스스로를 지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