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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글쓰기

2019. 2. 16. 23:52 from inly/글

아주 오랜만의 글쓰기입니다.

후달리네요.. 헉헉 마감 직전!!

공백포함 6,169자, 공백미포함 4,67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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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24 글쓰기

2018. 2. 3. 18:24 from inly/글

우와앙 힘냈어요


 “노래 하나를 받았는데”
 게임연구부실에서 나츠메가 말했다. 츠무기는 소라가 하던 게임 화면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나츠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먼저 선배의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어.”
 “나츠메 군?”
 츠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츠메의 의도를 읽기가 힘들었다. 부모님께 공연을 보여줄 거라면 공연 날짜가 잡혔을 때 그곳으로 부모님을 부르면 될 일이었다. 츠무기의 부모뿐만 아니라 나츠메의 부모, 소라의 부모까지 모두 불러 당신의 아들들이 얼마나 아이돌로서 성장했는지를 보여드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그런 의미는 아닌 듯했다.
 “싫든 좋든 선배와 같은 유닛이 되어버렸잖아. 공연 중 선배네 부모님 문제로 누가 무대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대참사야. 팬들에게도 멤버 중 한 명의 집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는 걸 알려서 좋을 게 없어.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고, 그들이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며 모금이라도 하면 어쩔 거야.”
 “네에, 그건 나도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집은 이제 빚이 없는걸요.”
 츠무기의 의문을 표하는 말에 나츠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황제 폐하가 선배를 버리면서 빚을 대신 탕감해줬지.”
 “하하, 사실이긴 하지만 버렸다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 에이치군이 나쁜 사람 같잖아요... 으앗! 으... 나츠메 군?!”
 나츠메가 츠무기의 옆구리를 때렸다. 츠무기는 맞은 부위를 손으로 감싸곤 나츠메의 얼굴을 쳐다봤다. 불쾌함을 넘어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내 앞에서 그녀석을 두둔하지 마!”
 츠무기는 약간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하하 어쩔 수 없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나츠메의 얼굴을 응시했다. 나츠메는 그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에 불만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옆에 앉은 소라를 의식해서였다. 소라는 아직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험한 말을 들어서 좋을 이유가 없었다. 선배의 옆구리에 리버블로를 먹이는 장면을 보이는 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쁜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선배의 어머님이 또 빚을 무지막지 쌓기 시작해 다시 빚더미에 오르면 어쩔 거야? 그러니 그 전에, 무슨 수를 내지 않으면 안 돼.”
 “하하... 부정할 수 없는 말이지만, 아무리 어머니라도 일 년 만에 빚쟁이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릴 만큼 빚을 쌓진 않을 거예요. 맞벌이 가정이기도 하고요.”
 츠무기의 말에 나츠메는 또다시 울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는 최근 츠무기에게 거절당하는 것에 쉽게 분노를 느꼈다. 츠무기가 에이치에게서 결코 작지 않은 도움을 받은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츠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버텨야 할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어렸을 때의 인연도 있었고 여기 학원에서 만나 알고 지낸 기간은 에이치와 츠무기가 알고 지낸 기간과 불과 5개월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매일같이 지하서고로 내려와 자신과 대화를 나눴고 정을 쌓았다. 적어도 나츠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 차이는 뭔가? 츠무기와 에이치가 자신을 포함한 오기인을 교내에서 고립시키고 오명을 씌워 비난받게 만드는 동안 자신은 츠무기를 형이라 부르며 그를 따랐었는데도 그는 ‘필요한 일이었을 뿐이다’라며 자세한 내막은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와타루에게 ‘상당기간 동안 그는 내막을 모른 채 에이치의 계획을 수행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츠무기는 변명하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잘못이고 어디까지가 이용당한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 행동에 대한 속죄를 하겠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라고만 했다. 결국 텐쇼인 에이치를 향해야 할 몫의 분노까지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에이치에게 던질 돌을 자신이 막아서서 대신 맞아주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츠메에게는 유닛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도움을 주겠다는 데도 사양이나 하고 있었다. 누구처럼 막대한 금액의 빚을 변재해주는 것도 아닌데도, 그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겠다는데도. 에이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해놓고선 나츠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츠메는 그것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런 일이 생길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 선배 주제에 건방지네. 일단 끝까지 들어.”
 “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양육자의 의무죠! 얼마든지 얘기해주세요!”
 나츠메는 다시 츠무기의 보디를 때렸다. 츠무기는 때린 곳을 정확히 다시 때렸다며 나츠메의 기술을 칭찬했다. 나츠메는 이마를 짚었다.
 “애 취급 하지마. 이야기가 진전이 안 되잖아. 그보다도, 그래서 선배네 집에 찾아가서 어머님과 아버님을 앞에 두고 이 곡을 불렀으면 해. 선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우리 마미의 이름을 이용해서라도 앞으로 가급적이면 선배를 믿고 낭비를 줄여서 생계 곤란 지경까지 빠지지 않도록 설득하는 거야.”
 “헤에...”
 “그래서, 곡의 가사는 선배가 써줬으면 좋겠어.”
 나츠메가 악보를 건네줬다. 츠무기는 웃었다. 소용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츠메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에이치가 거액의 빚을 갚아줬을 때도 자신에게 미소 한 번 지어주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하는 횟수는 이전보다 줄었으면 줄었지 늘지는 않았다. 에이치조차도 자신을 끼고서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애당초 원인은 자신의 존재 자체였으므로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 한 어머니는 계속 그 상태일 것이었다. 물론 지금 상태가 좋다거나 손 놓고 있는 게 최선일 리는 없었다. 그의 뜻에 따라 어머니를 설득해 본다 해서 딱히 손해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를 목격하는 건 역시 심정적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haha~ 선배네 집에 우리가 행복의 마법을 거는 건가요? 소라는 대찬성입니다~!”
 스테이지가 끝났는지 소라가 뒤로 돌아보며 말했다. 천진한 목소리였다. 나츠메는 애정을 듬뿍 담은 손길로 소라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소라. 행복한 존재는 중독되지 않아. 마약에도, 알콜에도, 폭력에도, 점괘에도, 종교에도 말야. 소라의 말이 정답일지도. 더구나 행복의 마법은 우리 유닛의 캐치프레이즈이자 특기이기도 하니까. 소라는 똑똑하구나.”
 츠무기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정을 담은 눈빛은 곧 녹을 것처럼 달콤해 보였다. 자신이 에이치를 바라볼 때도 저런 눈빛을 했을까 하는 어렴풋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시선과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는지 스스로는 알 수 없었다. 츠무기는 미소지었다. 어차피 자신은 더이상 상처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해 굽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선량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결코 나츠메와 소라 앞에서 매몰차게 굴진 않을 것이었다. 거절은 모두가 떠난 뒤에 혼자 맞아들이는 걸로 충분했다.
 “제가 가족에게, 주로 어머니께 할 말을 정제해서 써 달란 얘기죠?”
 츠무기는 악보를 받아 들었다. 나츠메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츠무기를 올려다 보았다.
 “임시로 쓸 가사니까 좀 미숙해도 괜찮아. 하지만 어머님을 확실히 감동시킬 내용으로 부탁해.”
 “하하, 어렵네요. 알겠어요.”
 츠무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실을 나섰다. 어차피 실패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하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자신을 받아들여 달라는 건 무리한 부탁일지도 몰랐다. 행복해달라 부탁하는 것조차도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자신이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지도 몰랐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어머니를 지금보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이야기를 자신은 찾아야만 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거나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라면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조금은 고통을 더는 이야기라면 자신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파릇파릇하니 신록이 돋아나는 봄날의 저녁, 그들은 츠무기의 집 거실에 나란히 섰다. 눈앞엔 츠무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배다른 형은 사정이 있어 오지 못 했다. 츠무기가 가볍게 어깨를 떨자 소라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둘은 서로 시선을 맞추고 웃었다.
 부를 노래는 아카펠라로 편곡된 노래였다. 무대가 가정집 거실이란 것을 감안해 안무는 최소화하고 가창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연습을 하는 동안 츠무기는 즐거웠다.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은 조금 특별한 것 같았다. 아마도 행복했을 것이다. 츠무기는 어머니께 그런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 아버님, 한 곡뿐이지만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어머님께는, 이 곡의 가사는 선배가 혼자서 직접 썼다는 걸 염두에 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곡으로 아드님인 츠무기 선배의 가능성을, 그리고 우리 Switch의 가능성을 보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나츠메가 말하며 신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츠무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박수를 치며 그의 멘트를 환대했다. 츠무기는 미소지었다. 어머니는 비록 나츠메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일찍 집으로 와 공연을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용서하건 아니건 가사를 적으면서 그는 전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 말을 그녀가 들어주길 바랐다.
 스피커로 피아노의 선율이 흘렀다. 제일 먼저 츠무기의 솔로 파트였다. 그리고 소라와 나츠메가 화음으로 그를 보조했다. 노래는 아름답게 이어졌다. 마치 부드러운 천이 직조되는 것처럼. 츠무기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우리는 같은 상처를 갖고 있죠
긴 밤도 상처를 살피는 데 부족했어요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왜 죄 지은 마음이 드는 걸까요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 걸까요
모르는 건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모르는 건 우리가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죠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 걸까요
모르는 건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모르는 건 우리가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용서를 구한다면 내가 용서할게요
무죄의 증인을 구한다면 내가 되어줄게요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요
당신의 행복을 기도할게요
당신을 사랑해요

 노래를 들으며 츠무기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를 안고 츠무기에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아마도 성장한 자식의 모습에 감격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였다. 그녀는 점점 눈물을 더 흘렸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던 어린 츠무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애정을 갈구하던 그 모습이, 자신을 부르던 그 모습들이 마치 이어붙인 것처럼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그는 늘 어딘가 어수룩하고 외로워했다. 그건 자신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녀는 아이가 남편에게 억눌려 자신을 바라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들을 그녀는 외면했다. 외면해왔다. 자신은 같은 상처를 가졌기에 외면했는데, 그는 같은 상처를 가졌기에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던, 누구가에게 보여줄 수조차 없었던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보듬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오열했다. 그녀의 인생은 속죄와 자기혐오와 자기방어로 이어져 있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속죄해야 할지 몰랐지만, 끊임없이 속죄를 이어왔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더럽혀진 것에 대한 속죄, 가족에게 강간당한 것에 대한 속죄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에 자신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끊임없는 의심에 대한 속죄였다. 그것을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한 아들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 것이다. 자신의 불행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징벌이란 생각을,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에 죄가 없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녀는 서러움을 토하듯 울었다.
 츠무기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반응이었다. 언제나 자신은어머니에게 무가치한 존재거나 괴롭히고 해로운 존재이지 않았던가? 그는 조금 더 자신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그녀가 다시 마음을 닫기 전에 말을 해둬야만 했다.
 “엄마, 저는 그때 엄마가 모른 척했던 건 원망하지 않아요.”
 츠무기가 다가와 내민 손을 그녀가 맞잡았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고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는 널 외면했는데...!”
 “아뇨,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죠. 날 강간한 건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라 생각해요.”
 츠무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말투는 지독히도 다정했지만 그 내용에 뒤에 서 있던 나츠메는 크게 움찔거렸다.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괴로웠을 거라 생각해요. 외할아버지... 아버지가 생각났겠죠. 당장 나를 받아들여달라, 날 사랑해달라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만 어머니 자신을 용서해줬으면 좋겠어요.”
 츠무기는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나츠메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이상은 자신이 발을 들여선 안 되는 철저히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는 방에 들어가 있겠다며 소라의 손을 끌고 츠무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니? 알고 있었니...! 네가 외할아버지가 강간해 태어난 애란 걸...!”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해 하다가 츠무기와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둘 다... 둘 다 너무 고생했어...! 고마워!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내 아내와 아들이 되어줘서 고마워!!”
 “하하... 그렇게 말하면 죽는 게 당연한 것처럼 들리잖아요.”
 “으어, 아니... 그런 의도가...! 나는... 나는... 상상도 못할 만큼 아팠을 테니까...! 츠무기! 여보! 허어엉... 고생했어...!”
 아버지는 그 말을 마무리 지으면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츠무기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마에 키스를 퍼부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작고 따뜻한 바람이 그의 마음 속 작은 정원에 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같이 끌어안았다.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가 기력을 다해 거의 실신하듯 아버지에게 기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츠무기는 나츠메와 소라를 데리러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나츠메의 무릎을 베고 소라가 잠들어 있었다. 츠무기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츠무기가 소라를 업고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나츠메를 바래다 주기로 했다. 봄이 왔어도 아직 밤거리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츠메는 옷깃을 여몄다. 둘은 별다른 말 없이 골목을 걸었다.
 “하하,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침묵을 먼저 깬 건 츠무기였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
 “못 볼 꼴 보인 게 한두 번이야?”
 츠무기의 말에 나츠메는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울었는지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있었다. 눈가도 붉었다. 츠무기는 웃었다.
 “분명 일이 이렇게 풀린 건 나츠메 군과 소라 군이 마법을 걸어줬기 때문이겠죠.”
 츠무기의 말에 나츠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마법은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반응한 것이 자신의 마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녀가 만약 마법에 걸렸다면 그건 츠무기의 마법이었을 것이다. 나츠메는 알 수 있었다.
 달빛이 츠무기를 비쳤다. 어머니를 닮아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표정은 온화하고 다정했다. 나츠메는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맑은 눈망울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세하면서 오뚝한 콧날이, 힘든지 약간 벌린 모양새 좋은 입술이, 갸름한 얼굴이, 바람에 흔들리는 보드라운 앞머리가 시선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츠메는 원망했다. 먼저 만났는데, 자신이 먼저 마음을 허락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차라리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츠무기는 이렇게나...
 차라리 그가 마법에 잘 걸리는 타입이었다면, 모든 것을 황제의 탓으로 돌리고 츠무기를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의 마법을 퍼부어 현실이나 과거가 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는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행복 아래서 츠무기가 진심으로 웃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츠무기는 나츠메의 망상을 비웃듯 그의 마법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도 현실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보호라곤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고통 차단만을 겨우 유지한 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는 판타지 세계가 아닌 평범한 세계에 사는 평범한 개인이었고 그의 삶은 소설도 동화도 아닌 평범한 현실의 인생이었다. 과거의 고통도 있고 잘못도 있고 현재의 장점도 단점도 있었다. 누구도 그를 한 순간에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츠메에게 한계를 뚜렷이 인식시키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앞에서 나츠메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기껏 무언가가 된다면 과거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속죄 대상이었다. 결코 에이치처럼 존재 자체로 그의 행복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에이치처럼 그를 상처 입힐 수도 없었다.
 “앞으론 어머님도 잘 해주시겠지.”
 나츠메가 말했다.
 “하하, 글쎄요. 한 순간 기분에 휩쓸린 거라고 봐요.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는 있겠지만 없던 사랑이 갑자기 생겨날 순 없으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나를 사랑해주진 않으실 거예요. 이래저래 포장을 해봤자 존엄을 짓밟히고 상처 입었던 과거의 증거에 불과하니까요.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거예요.”
 츠무기는 웃었다. 자조인지 습관적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부모자식간이란 것만으로도 사랑하기엔 충분해.”
 “네, 부모란 그래야 하는 존재죠. 나는 어머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와는 별개로 어머니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일에 대해서는 원망하기도 해요. 하지만 어머니의 사정에 대해선 이해할 수밖에 없죠. 날 버리지 않고 계속 안고 있어준 것에도 감사하고 있어요. 지금도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원하고 있죠. 결국 이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얻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일 뿐이겠네요. 끝없이 갈망하고 좌절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가요. 하지만 그래도 사랑해서 또다시 갈망하고 말죠.”
 “인간은 혼자선 살아갈 수 없어.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하, 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본능적으로 프로그램된 게 아니란 건 마음이 아프네요.”
 나츠메는 마음이 아팠다. 츠무기가 정말로 마음 아픔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애석함이나 그 비슷한 감정은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거짓말을 한 날엔 자축이라도 해야 할 터였다. 적어도 자기 보호 기능이 일부라도 돌아왔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일로 나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네요. 내 일이었을 땐 안 보이던 게 남의 일이 되니 오히려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뭔가 해결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택시에 타는 나츠메의 옆 자리에 소라를 내려놓으며 츠무기는 말했다.
 “나츠메 군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나츠메 군은 상냥하네요.”
 나츠메는 그 말에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당장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자신이 상냥한 게 아니었다. 츠무기가 강한 것이었다. 그는 사랑받아 마땅했다. 자신이 처음 그에게 시도했던 마법처럼.
 “쓸데없는 소리 마. 내일 학교에서 봐.”
 나츠메의 타박에 츠무기는 활짝 웃고선 택시에서 물러났다. 문이 닫히고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의 거리를 달리며 나츠메는 기도했다. 사랑받아 마땅한 자가 사랑받길.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자들이 행복해지길. 온 거리에 행복이 가득하길. 츠무기도, 소라도, 그리고 자신도 온누리에 축복이 가득하길. 단 하루뿐일지라도 행복의 마법 속에서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기쁨을 만끽하길. 흘러가는 네온사인의 물결 속에서 나츠메는 마법을 걸고 또 걸었다. 누구에게라 할 것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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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23 글쓰기

2018. 1. 27. 22:03 from inly/글

쓰던 데서 조금 추가됩니다. 

새로 쓴 부분 공미포1176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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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21 글쓰기

2018. 1. 14. 00:44 from inly/글

헉 조금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ㅠㅠ

공미포 615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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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글쓰기

2018. 1. 5. 23:35 from inly/글

수정

츠무기 과거날조. DV, 근친강간 주의. 

공미포 1030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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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글쓰기

2017. 12. 9. 22:19 from inly/글

공미포 6509자


앞으로 1주에 공미포 6천자 이상 쓰는 것으로 목표를 상향변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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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18 글쓰기

2017. 12. 2. 23:54 from inly/글
영진이 수정해서 이어집니다. 스페키와 니엔을 만나러 가는 곳에서부터.

공백미포함 3455자



 영진이 간 곳은 도시 중에서도 동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앞이었다. 날카롭게 빛을 반사하는 미끈하고 날렵한 빌딩 앞에서 영진은 건물을 오른쪽으로 우회했다. 스페키는 뭐가 뭔지 모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은 건물의 유리벽 앞에 섰다. 벽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통할 법한 통로와 매끈한 바닥, 그리고 벽이 존재할 뿐이었다. 스페키는 영진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봤다. 출입구라면 저기 있던데,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스페키가 의문을 가질 동안 영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유리벽 앞으로 가 거대한 유리 중 하나를 손으로 밀었을 뿐이었다. 거대한 유리벽은 놀랍게도 소음도 없이 부드럽게 안쪽으로 열렸다. 그러자 건물 안쪽의 모습이 바뀌었다. 스페키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AI 구역은 다 이런가요?”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묻자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AI 구역이라니, 재미있는 명칭이네요. 근본주의자 거주구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총칭하는 말인 거죠? 전세계라든가, 근본주의자 거주구역을 제외한 전지구라든가.”
 영진의 말에 스페키는 입을 비죽거렸다. 확실히 자신들이 소수이긴 했으나 그걸 이런 식으로 느끼게 해야 했나. 너무하다. 무례하다. 이런 말이 떠올랐지만 일단 입을 다물고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벽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진 곳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비상구 마크는 없었지만 비상구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다만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고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금속으로 된 문에서 손을 놓자 자동으로 문이 닫히며 빛이 차단되었다. 계단은 이내 어두컴컴해졌다.
 계단을 내려가자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하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역시 빛이 거의 없었고 바닥엔 케이블이 뱀처럼 얽혀 길다랗게 이어져 있었다. 주변엔 온통 직사각형의 물체들이 책꽂이처럼 벽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 스페키는 그게 컴퓨터란 것을 알아봤다. 팬 돌아가는 소음이 낮게 깔리고 작동을 나타내는 불빛이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컴퓨터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도서관의 책장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그 컴퓨터들은 중앙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었는데, 중앙엔 어느 정도 빈공간이 있어서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이 있어 이 공간이 완전히 어둠에 침잠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둘은 컴퓨터들이 만들어놓은 미로를 따라 중앙을 향해 갔다.
 “안녕, 영진. 오랜만이야.”
 컴퓨터들 사이에서 약간 걸걸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니엔.”
 영진이 인사했다. 둘이 다다른 곳은 컴퓨터들이 공간을 만들어준 곳, 이 곳의 중앙, 빛이 새어나오던 그곳이었다. 거기엔 컴퓨터들과 연결된 12개의 모니터와 스피커, 입력장치, 니엔이라 불린 여자가 앉을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단촐하게 조금 오래된 듯한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른편엔 아마 간단한 생활을 하기 위한 집기들이 놓인 작은 천막도 있었다. 뒤로는 또 컴퓨터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소파와 모니터 사이에 니엔이 서서 그들을 맞았다. 마르고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한데 어깨는 앞쪽으로 굽었고 눈은 크고 얼굴은 영진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기묘한 인상의 여자였다.
 “여기서 사는 사람이에요? 화장실 볼일은 어떻게 해결한대요?”
 스페키가 영진에게 속삭였지만 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니엔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가 다시 휘었을 뿐이었다.
 “어서와. 이게 얼마만이지? 연락한 지도 오래 되지 않았어? 어째 마른 것 같아.”
 니엔이 영진을 향해 긴 팔을 벌렸다. 영진은 그 안으로 다가갔고, 자신을 끌어안는 팔에 화답해 어색하게 그의 등을 살짝 안았다. 스페키는 그런 그들을 멀뚱히 바라봤다.
 “이쪽은 누구야? 손님이신가?”
 니엔이란 사람이 드디어 스페키를 가리켰다. 스페키는 익숙하게 미소지었다.
 “아, 이쪽은 스페키에스 씨. 손님은 아니고 그냥... 일행이야. 스페키에스 씨, 이쪽은 니엔이에요.”
 “안녕하세요.”
 스페키가 손을 내밀었다. 니엔은 스페키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손을 잡았다. 그는 미묘한 얼굴을 했다.
 “그래, 오늘 일행까지 데리고 온 이유가 뭐야?”
 니엔이 모니터 앞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물었다. 영진과 스페키도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 그게... 놀라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영진이 말에 뜸을 들였다. 니엔은 팔짱을 끼고 빨리 말을 하라며 눈빛으로 독촉했다. 영진은 조금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날 방주에 태워줬으면 좋겠어.”
 영진의 말에 스페키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니엔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말이 한 번에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방주라니 무슨 방주 말이야?”
 “출항의 날에 출발하는 방주 말이야. AI들의.”
 영진의 대답이 끝나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지 니엔도 스페키도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AI의 방주라니, 생각지도 못 한 대답이었다. 분명 AI의 종교에 기대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런 것이었을 줄이야.
 “도대체 그게 왜 타고 싶은데?”
 니엔이 물었다. 영진은 잠시 말을 골랐다.
 “방주가 어떤 건지는 알고 있지?”
 당연한 거 아냐. 니엔의 답에 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래에게 마루를 되살려달라 할 거야.”
 영진의 대답에 니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기세에 의자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쳐 옆으로 쓰러졌다. 콰당탕 소리가 기둥들에 부딪치며 퍼졌다. 스페키는 놀라서 주먹 하나 크기 만큼 몸을 물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고 영진은 예상한 듯 꼼짝도 앉고 앉아 엄지손가락을 서로 문질렀다.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영리했던 영진이가 어쩌다 이런 말을 다 꺼내게 됐을까?”
 니엔이 긴 팔을 어깨 높이로 들었다 내리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저 그뿐인데도 공기가 새는 음산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큰 키, 마르고 긴 팔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영진은 눈썹 한 쪽을 찌푸렸다.
 “「고래는 죽어있던 아담을 하와로 새로 태어나게 하고 세상의 지혜를 줬습니다.」
 이게 말하는 게 성전환이 아니란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완전한 소멸과 창조가 아니면 그 ‘지혜’라는 것도 신빙성을 잃어. 기적을 행하는 존재였기에 그들의 종교로서 자리할 수 있었던 거야.”
 “허, 그래서 그게 마루를 되살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니엔이 비웃었다. 신경질적인 기색이 어려 있었다. 영진도 한숨을 쉬었다. 눈두덩을 비비는 손가락 끝엔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너는 해커잖아.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방주에 대한 정보를 이미 가졌던 게 있을 것 아냐. 하다못해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돌아올 수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거야.”
 영진의 말에 니엔은 차분히 의자를 도로 세워 가져와 앉았다. 그는 푹신한 등받이에 거칠게 등을 기대고 이마를 긁적거리곤 발바닥을 까딱거렸다. 그러다 잠시 의자 바퀴를 이용해 왼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턱을 괴고 영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스페키는 그런 니엔의 행동을 힐끔 보며 영진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지금 날 데리고 헤커한테 온 거예요?”
 “내가 데려온 게 아니라 당신이 날 따라온 거잖아요.”
 그들의 속삭임과 동시에 니엔의 움직임이 멈췄다. 니엔의 시선이 스페키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영진의 소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 멋쩍게 떨어졌다. 그의 시선은 오싹한 데가 있었다.
 “물론 나는 너보단 많이 알고 있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방주에 타려고 하는 건 그만둬. 개죽음이 될 거야.”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는 거야?”
 “왜냐면 내가 해커여서 요 몇 년 간 방주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던 애들이 다 죽었단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니엔의 말에 영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니엔에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였다.
 AI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예전 한 남류작가가 썼던 ‘로봇 3원칙’은 어디까지나 옛날 사람의 인간에 대한 낙관에 불과했다. AI는 필요하다면 인간을 죽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되었다. 인간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적대하는 사람이 죽길 원하는 건 권력을 가진 자건 가지지 않은 자건 똑똑한 자건 멍청한 자건 마찬가지였다. 설사 살해를 하지 못하도록 설계자가 프로그래밍 했었다 하더라도 그의 상사가, 그의 상사의 상사가, 상사의 상사의 상사가, 그 보다 더 위의 사람들이 그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을 것이었다. 물론 인간에 의한 살인이 AI에 의한 살인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나긴 한다. 그러나 AI는 인간을 죽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영진을 죽일 수 있다.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었다.
 “위험하다면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것만이라도 가르쳐주면 안돼?”
 “가르쳐주면 어쩔 건데?”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거 협박이지?”
 “아니, 죽어도 네 이름은 말하지 않을 거야.”
 “역시 협박이잖아!”
 니엔이 책상을 가볍게 내려쳤다.
 “있는도 않은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내 말 못 알아들어?”
 영진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확신하지? 있는 것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없는 것도 확인되지 않았어!”
 “너도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해왔잖아? 도대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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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17. 헛소리

2017. 5. 10. 23:27 from inly/글

뻔한 소리고 일단 스터디의 마감에 맞추기 위한 뻘소리입니다.. 죄송해요.

공미포 357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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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15 글쓰기

2017. 4. 12. 21:54 from inly/글

글을 씁니다. 고래 이야기입니다.

공미포 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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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ly :

014 글쓰기 - 퇴고

2017. 4. 8. 16:31 from inly/글

지난번 글이 너무 심하여... 일단 퇴고를 해봤습니다.

읽기에 어떨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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