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빛 하늘에만 사는 혹등고래가 있었다. 이름은 이오였고 몸이 아주 거대했다. 등엔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이오는 괴념치 않았다. 혹등고래는 몸에 따개비가 얼마나 붙어 있는지, 생김새가 어떤지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원래 밤혹등고래가 그렇듯 낮이 되면 깊은 산속 골짜기에 몸을 누이고 잠들었다가 밤이 되면 그 거대하고 힘찬 꼬리를 움직여 별무리들 사이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나아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그녀의 배 아래 펼쳐진 바다와 그녀가 유영하는 바다가 똑같은 색깔을 띠어 어디까지가 지구고 어디까지가 우주인지 구분할 수 없는 밤하늘이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바다였다. 그녀가 거기에 이르면 그녀의 다른 밤혹등고래들이 그러했듯 은하수로 도약하여 조상들로부터 구전되던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형제들이 먼저 그러했고 부모가 그러했다. 그곳은 그녀의 꿈이자 행복이었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행복했다. 배 아래엔 심해어처럼 어둠 속에서 불을 켠 인간의 건물들이, 등 위엔 한없이 뿌려진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그 사이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반짝이는 생명들이었다. 그녀는 가끔 내킬 때면 완전히 몸을 거꾸로 세우고 잠수하여 깊은 밤 잠든 어린애들의 이마를 어루만지기도 했다. 살풋 잠에서 깬 어린이들의 눈길과 온기, 미소를 느낄 때면 더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린이들만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숲속의 크고 작은 친구들에게도, 인간들이 만든 건물 창문에 붙어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작은 동물들에게도 그녀는 축복의 키스를 했다. 그러면 그들은 눈에 경이와 반가움을 담고 그녀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들을 좋아했다.
그날도 그녀는 유유자적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멀리서 아스라히 다른 고래들이 수면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소리가 껴들었다. 뭔가가 바닥을 세게 쳐서 울리는 소리였는데, 그녀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밤혹등고래는 소리를 향해 헤엄쳤다. 소리는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나고 있었다.
“안녕, 거기서 뭘 하고 있니?”
밤혹등고래가 물었다. 옥상 위에는 토끼 한 마리가 서서 발을 굴리고 있었다. 귀는 꼿꼿이 세우고 눈은 눈동자 경계가 다 보이고도 남을 정도로 크게 뜨고 온몸에 힘을 주고 서서 일정한 박자에 맞춰 발을 세게 구르는 것이다. 발을 굴릴 때면 높고 가는 콧소리도 났다. 토끼를 잘 모르는 밤혹등고래가 봐도 토끼는 화가 난 것 같았다. 토끼는 그녀를 한번 힐끗 보더니 다시 발을 굴렸다. 가까이서 들으니 그 소리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밤혹등고래는 토끼가 언제 발을 굴릴지 알면서도 깜짝깜짝 놀랐다.
“나는 화가 나!”
토끼가 말했다. 밤혹등고래는 아파트 옥상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토끼를 몸으로 감쌌다.
“왜 화가 났어?”
밤혹등고래가 물었다.
“왜냐면 같이 살던 가족이 날 춥고 어둡고 쓸쓸한 곳에서 혼자 죽게 했기 때문이야!”
토끼가 대답했다.
“너는 토끼의 유령이구나?”
밤혹등고래가 물었다.
“그 후로 나를 불태우고 뼈를 가루를 내서 갖고 있어! 가족은 처음엔 조금 슬퍼하더니 이젠 너무나 잘 살고 있어! 화가 나! 하다못해 발을 쿵쿵 울려서 잠을 못 자게 괴롭혀줄 거야!”
토끼는 화를 내며 또 발을 굴렀다. 밤혹등고래는 토끼가 진정하길 바라며 정수리에 키스를 했다. 그렇게 발을 세게 굴리기에 토끼의 다리가 너무나도 가늘고 안쪽으로 꺾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덩이와 다리가 젖어 있는 것은 자신의 오줌 때문인 것 같았다. 토끼는 마르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몹시 가늘었다.
“진정해. 가족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 거야.”
밤혹등고래의 말에 토끼는 즉각 반발했다.
“아니야! 그애는 내가 붙잡는 것도 모른 척하고 날 버리고 나가버렸단 말이야!”
밤혹등고래는 말없이 한 바퀴 더 토끼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는 토끼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생각했다.
“그 집이 원래 추운 곳이기 때문이야. 그애는 나한테 자주 들이대던 네모나고 납작한 것을 볼에 대고 방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곤 했어. 그래서 두꺼운 커튼을 달 수밖에 없었대. 커튼을 쳐 놓으면 집은 마치 달도 뜨지 않은 밤처럼 깜깜해져. 아무것도 볼 수 없어.”
“그랬구나.”
밤혹등고래는 토끼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이란 얼마나 무섭고 힘든 것인가. 그 무섭고 힘든 것을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맞이해야만 했단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끼는 계속 말했다.
“나는 너무 무섭고 너무 서러웠어. 힘이 빠지고 고통의 감각마저 멀어지며 죽음의 예감이 나를 계속 감싸 들었는데, 나는 죽음의 순간을 그애와 함께 하기위해 그애가 잠든 동안 죽지 않기 위해 버텼는데, 그애는 나를 두고 나가버렸어. 나의 죽음을 봐달라고 그렇게 온힘을 다해 앞발을 움직였는데도. 그 전날까지 내 곁에 꼭꼭 붙어있어 놓고선.”
“왜 그랬을까..”
“그러게, 왜 그랬을까.”
토끼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앞발을 모으고 웅크렸다. 밤혹등고래는 토끼의 그윽해진 눈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