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포 3207자
단어 수 1018
고래 이야기 계속
밤혹등고래는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건물들은 3층이나 5층이 전부인 낮은 건물들이었다. 밝고 시끄럽고 더러운 거리였다. 몇 명인가는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길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밤혹등고래는 그곳을 가능한 빨리 지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밤혹등고래의 지느러미에 누워 있던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며 아래로 내려가자고 채근했다. 밤혹등고래는 건물에 배가 닿을 듯 말듯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 저기 벽돌집 3층건물!”
토끼가 작은 골목 옆에 위치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과연 가까이 가니 짓눌려 고통스러워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밤혹등고래는 건물을 세 바퀴나 돌아본 다음에야 3층 서쪽 창문의 창틀에 납작하게 짓눌려 붙은 병아리를 발견했다.
“안녕, 병아리야.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까?”
고래가 물었다. 병아래는 계속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밤혹등고래는 병아리의 부리에 자신의 코를 맞대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에게 이렇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눈을 감으면 상대의 생각이나 과거가 흘러들어오곤 했다. 밤혹등고래는 이 작디 작은 병아리가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너를 가족으로 선택한 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누가 너를 네 가족 몰래 괴롭히고 찍어눌렀니? 압사의 과정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떤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든 엄청난 고통이 따랐을 것이었다. 밤혹등고래는 병아리의 부리에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체온에 눈물을 흘렸다. 병아리는 그의 모습에 마음을 여는 듯 눈을 감았다. 밤혹등고래는 병아리의 숨결이 자신에게 스미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병아리는 종이상자 안에 있었다. 다른 병아리들이 잔뜩 있었고 춥고 배가 고팠다. 바닥은 똥으로 질퍽댔다. 시끌시끌했고 먼지가 많았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아줌마’는 큰 소리로 지나가는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흥정을 걸었고, 우악스럽게 다른 병아리들을 쥐고 들어올렸다 내리곤 했다. 그러다 병아리가 팔렸다. 병아리를 산 손은 처음엔 주름이 많고 거칠거칠하고 딱딱했다. 비닐봉투에 아무렇게나 넣어 흔들어대며 걸었다. 병아리는 불안감에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옮겨간 곳은 어린 사람의 손이었다. 여전히 종이박스에 신문지를 깐 처지였지만 괜찮았다.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밥이 있고 물이 있었다. 앉을 틈도 없이 빽빽히 서서 배고픔과 갈증을 호소하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봐주고 사랑하는 ‘주인’이 생겼다. 주인은 학교에 다녀오면 나를 찾아왔고, 밥과 물을-비록 밥이란 게 쌀과 좁쌀을 섞은 것뿐이었어도- 챙겨줬다. 병아리를 보는 것을 기뻐하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우악스럽게 움켜쥐는 일 없이 부드럽게 손바닥을 아래에 내밀어 자신의 손 위에 올라타 주길 요청했다. 병아리는 만족했다. 그는 어린 주인이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했고, 추운 겨울임에도 코트를 입고 오빠를 데리러 차를 타고 나서는 데 자신을 데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코트 소매 사이로 소매를 타고 올라가 어린 주인의 목 뒤로, 머리카락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고 주인의 체온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주인이 자신이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기뻤고, 그 행동으로 주인이 기뻐하는 것이 기뻤다. 병아리는 주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저녁에서 밤으로 옮겨가는 시간이었다. 어린 주인이 베개도 없이 바닥에 누웠다. 병아리는 주인에게 다가갔다. 이불을 까는 시간이면 자신도 거실에 있는 상자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 주인과 같이 잘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거실의 상자가 춥고 어두워 울고 있으면 어린 주인이 나와 한동안 같이 있어줬지만, 체온을 나누며 함께 편안히 잘 수는 없었다. 병아리가 원한 것은 어린 주인과 행복한 잠을 자는 것, 그것뿐이었다.
병아리는 누운 주인의 목 뒤로 들어갔다. 익숙한 행동이었다. 주인의 오빠를 데리러 갈 때면 늘 그랬듯, 머리카락과 목 뒤 체온으로 그들은 함께 있었고, 그러다 병아리가 내킬 때면 주인의 볼과 부리에 뽀뽀를 해줬다. 언제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주인도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잠들었다.
아주 조용한 죽음이었다. 병아리를 사랑하던 어린애가 잠결에 뒤척이며 고개를 돌렸고, 아이의 머리가 병아리를 죽였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병아리는 한 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린 주인은 자신의 언니가 일어나 보라고 채근하는 소리에 일어나 납작해진 병아리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봤다. 어린 주인은 병아리의 죽음을 제대로 추모하지 못했다. 그저 약간 슬퍼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책상 서랍에 넣었다가 베란다의 화단에 묻었다. 울었던 것은 진심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병아리는 혼자 차가운 흙 속에 묻혔다.
-나는 학대를 당한 걸까?
병아리가 물었다. 밤혹등고래는 애매한 표정을 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밤혹등고래는 그윽한 눈으로 병아리를 바라봤다. 이 죽음을 뭐라고 해야할까?
-그애가 어렸기 때문에, 그냥 서로 미숙해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창틀에 누워 있는 거야? 아직 날이 쌀쌀해. 춥지 않니?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있었던 거야?”
-주인이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혼을 하고 이 집을 떠났어. 고등학생 때 잠시 왔지만 대학을 가며 또 이 집을 떠났어. 그러면서 1년에 단 두 번 이 집에 오지. 그애가 집으로 올 때면 서쪽에서 와서 이 방으로 들어와. 그리고 떠나갈 때도 서쪽으로 나가거든. 올 때면 오는 모습을 일찍 볼 수 있고 갈 때면 가는 모습을 늦게까지 볼 수 있어. 나는 그애가 보고 싶어. 다시 한 번 목 뒤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하고 싶어. 손바닥 위에 배를 깔고 그 체온을 느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밤혹등고래는 눈물을 흘렸다. 병아리는 훌쩍 큰다. 병아리가 병아리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렇게 어린 병아리였다면 아마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마 함께 지냈던 시간은 단 며칠에 불과했을 것이었다.
“넌 정말 멍청하구나! 주인이 뭐니? 널 죽인 가족을 주인 같은 걸로 부르니 그렇게 오랫동안 청승을 떨고 있는 것 아니야!”
토끼가 지느러미에서 한 마디 했다. 병아리는 토끼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숨을 거칠게 쉬었다. 폐가 짜부러져서 숨 쉬는 게 힘들었는지 쌕쌕삑삑대는 소리가 났다.
-저도 그 몰골을 보니 주인한테 뭔가 맺힌 게 있는 거겠지? 그러니 서지도 못하고 모로 누워 있는 것이겠지!
“나도 옆으로 누웠지만 너처럼 짜부러지진 않았거든?!”
이번엔 토끼가 씩씩댔다. 밤혹등고래는 다른 지느러미로 토끼를 진정시켰다. 토끼는 코로 숨을 킁킁 내쉬며 자세를 바꿔 병아리를 등졌다. 병아리는 병자처럼 쌕쌕 숨을 내쉬었다. “진정해.” 밤혹등고래는 천천히 병아리에게 말했다. 그 거대함 때문인지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아주 자애로운 소리였다. 밤혹등고래는 그리고 애정표현으로서 병아리의 정수리에 키스했다. 병아리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니?”
밤혹등고래가 병아리에게 물었다. 병아리는 궁금증이 이는 눈으로 밤혹등고래의 눈을 봤다.
“우리는 천국을 찾아 가고 있단다. 그 전에 여행도 잔뜩 할 거야. 어쩌면 네 가족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병아리는 그윽한 눈으로 밤혹등고래를 쳐다봤다. 그는 고개를 조금 내밀어 고래의 코에 부리를 갖다댔다. 고래는 이 사랑스러운 병아리의 행동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병아리는 고래의 등에 올라타려고 했지만 병아리가 종잇장처럼 납작했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다. 본의 아니게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토끼가 겨우 병아리를 물고 밤혹등고래의 등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과정은 험난하고 위험천만했지만 마침내 이루어졌다. 모두가 만족했다. 토끼도 처음엔 조금 틱틱거렸지만 곧 표정이 밝아졌다. 그가 불만이었던 것은 병아리가 스스로를 어린 인간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었다. 병아리가 ‘주인’이란 말을 버림으로써 토끼의 불만은 완전히 없어졌다. 그들은 밤하늘을 다시 높이 날았다.
밤혹등고래가 꼬리지느러미를 크게 좌우로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이 빠르게 뒤로 나아갔다. 병아리는 이른 광경은 처음이었다. 인파와 불빛이 그들의 배 아래로 스쳐가고 완만한 산과 강이 나타났다. 바람이 오는 방향엔 둥그런 달이 있었다. 무수히 뜬 별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빛이 가슴 뭉클했다. 언제 주인이 오나 언제나 차도와 사람들만 보던 병아리는 가슴이 시려왔다. 시종 말을 걸어오는 토끼도, 동굴 같은 목소리로 이따금 말을 걸어주는 밤혹등고래도 아름다웠다. 병아리는 밤혹등고래의 등 위에서 토끼와 마주보며 누웠다. 밤혹등고래는 살며시 웃으며 밤하늘을 부드럽게 유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