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소리고 일단 스터디의 마감에 맞추기 위한 뻘소리입니다.. 죄송해요.
공미포 3577자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평균수명은 2015년 기준 82.06세로, 1980년의 65.69세에 비해 16.37년 늘어났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늘었으며, 국내 최장수 할머님의 연세는 2017년 2월 10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113세라고 한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따르면 2030년에 이르면 1인가구의 비율은 33%에 이를 것이라 한다. 물가는 미친듯이 오르고 약자들은 배척하겠다고 선언하는 레드준표의 지지율이 24%에 이르고 각자도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988년 최저임금 생계비 충족률이 79.8%였던 것이 69.6%로 떨어졌다. 외벌이로 2인, 3인 가구를 충당하려면 최저임금으로는 생계비 충족률이 43%, 33.9%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기준임금으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대중의 성향 변화는 조금 더 암울하다고 볼 수 있다. 최악의 불경기 아래서 배타와 혐오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적대감이 위험치에 달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일베를 하면서, 뉴스를 보면서, SNS를 통해서 자신의 암울한 상황과 고됨의 원인을 경제적 약자에게서 찾는다. 이는 아직도 냉전시대의 전쟁과 가난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년층 이상의 세대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자는 국정원과 모 정당의 정치 게임으로 인한 분열이라 하기도 한다. 불경기가 심해지자 극도의 우경화를 통해 전쟁을 하고 선민의식을 고취시켜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착취와 학살로 시스템을 공고히 하려 했던 독일의 전적도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 연임 직후 트럼프가 선출되고 일본에서 전쟁 위협을 높이는 아베가 총리직을 연임하고 중국이 동북아공정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며 대만을 괴롭히고 필리핀에서 두테르테가 아직도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두 발로 걸어다니며 타인을 괴롭히는 것과 파괴하는 것 이외에 딱히 재주가 없는 인류란 이름의 호미니데(Hominide: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을 포함하는-두산백과 참조)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현재 20대와 30대는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평생을 일하며 50년 후 얼마나 늘어났을지 짐작하기 힘든 기대수명을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체가 소모품이다. 관절 연골은 활동하는 만큼 닳는다. 심장은 뛸 수 있는 횟수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안타깝게도 뇌는 아끼면 아낄수록 바보가 된다고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혹사시키면 혹사시킬수록 스트레스와 과부하가 걸려 우울과 같은 정서적 정신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사무직은 앉아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을 위험성이 증가하고 하지정맥류가 생길 위험성이 있으며 이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콜레스테롤이 증가해 혈관이 가늘어진 상태에서 각종 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뇌졸중으로 오게 된다. 현장직은 물론 사고의 위험성이 높고 눈, 척추, 손가락, 팔목, 팔꿈치, 어깨, 무릎, 발목과 같은 곳에 무리가 오게 되어 심장은 뛰고 있으나 눈이나 척추, 관절이 수명을 먼저 다하여 최악의 고통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 수 있다. 물론 병증으로 인한 노동 정지와 빈곤은 서비스로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는 근로시간 단축이다. 현재 한국의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 심지어 실제보다 상당히 축소시킨 데이터였음에도 세계 2위를 먹었다. 안타깝게도 2016년 여당이 주말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주당 근로시간을 늘려버리는 바람에 명맥만이라도 주5일을 표하던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주6일 내지는 격주6일로 돌아섰다. 과로사 사례가 빈번하게 이어져도 일단 ‘회사는’ 돌아가고 소비자들은 노동권에 지나치게 둔한 풍토 때문에 또다시 회사는 과로사를 생산한다.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과로사한 직원의 자리는 남아있는 직원만으로 채운다. 그렇게 해도 어떻게든 돌아간다. 그러면 또다시 과로사하는 직원이 나온다. 괜찮다. 회사는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미 밤 10시, 새벽 2시에 퇴근시키는 상황에 익숙하고, 그것을 회사에 대한 충성으로 여긴다. 12명분의 일을 7명에게 시켰는데 한 명이 죽어 6명이 되어 인건비도 적게 나간다. 회사 이미지에 금조차도 가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요즘 같은 시대에도다. 연봉은 포괄연봉제로 야근수당을 주는 곳도 거의 없다. 유가족은 산재는커녕 위자료조차 받지 못한다. 매일 야근하느라 힘들어 운동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데 그게 자기관리 태만으로 죽은 건지 과로사인지 알 게 뭐야. 사장뿐만 아니라 근로자조차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갑을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그렇다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할 것은 운영진들을 전문가들로 채우는 것이다. ‘경영’의 전문가들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업계’의 전문가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부의 정확한 비전과 디렉션이 있어야 낭비가 적다. 그냥 돈이 많아서 사업 좀 해봐야 겠다는 60~80년대를 주름잡았다던 꼰대 사장들에겐 희망이 없다. 로고, 카피라이트, 콘셉트를 선정하는 센스나 심미안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을 선택하는 눈조차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경영을 잘 하느냐 하면 꿈과 희망으로 맨땅에 머리만 갖다박고 머리 쓸 일 없이 일만 하다가 적당히 은행에 몫돈만 짱박아놔도 알아서 재산이 불어나던 그 시절의 꼰대가? 돈이 많고 나이가 많고 남자란 이유로 온갖 넙죽넙죽네네만 받아왔던 그들의 머릿속에서 효율적인 일처리나 근로자와 사업주는 계약관계의 동등한 인격자라는 사실이나 세월이 흘러 시대가 달라졌다는 사실 따위는 이미 사라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을 할 것이란 기대는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훌륭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은 이런 사람들의 퇴짜로 사장되고, 온갖 시행착오 끝에 촌스럽고 퇴행적인 온갖 디자인과 프로젝트, 제품들이 시장에 전시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후진국 마인드에 사로잡힌 경영자들에 의해 국내외의 성공한 디자인이나 제품의 ‘짝퉁’들 역시 생산되어 그들과 함께 진열된다. 대단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의 끔찍한 교육열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낭비되고 끔찍이도 낮은 생산성을 기록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사회에 만연한 군대문화 해소다. 이 문화는 대단히 사람들의 창의성을 억누르고 무기력을 학습하게 하며 거의 모든 직장인들을 공무원화 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회의 윤리성을 해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다. 생산성의 저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익숙한 것이 아니면 아무도 기획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말해도 묵살되기 일쑤다.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하고 다양성을 해치며 남들 혹은 상사의 KIBUN을 맞추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한다. 능력보다도 KIBUN을 잘 맞추거나 상사의 시중을 잘 드는 사람이 승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승진한 무능한 상사가 또다시 유능하거나 창의적인 신입에게 자신과 같이 굴기를 강요한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상상력 부재가 회사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는 회사의 관료화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이 문화와 오랫동안 싸워왔고 예전보다는 훨씬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군대문화는 너무나 공고해 보인다. 그 모든 시스템 전환과 온갖 궁리들이 무색할 정도다. 그렇다면 여기서 보강해야 할 것은 여성 고용 확대와 수평적 가족문화 캠페인, 성평등의 강화를 위한 노력이다. 또한 업무 강도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필수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구실을 찾아 타인에게 가혹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상명하복의 관계는 하급자를 고문하기에 최적화된 관계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인간은 인간을 괴롭히고 군대문화를 강화한다. 불평등과 업무강도와 노동시간을 줄일수록 우리는 군대문화에서 더 멀리 벗어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법안의 강화다. 말해 입 아프다. 노동시간 제한을 강화하고 최저연봉을 현실화하고 포괄연봉제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야근을 시키는 것이 사람을 더 뽑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들도록 해야 한다.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 주6일제가 뭐냐 주6일제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이것들이 이루어지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성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국민의 수입은 곧 국가의 세금 수입으로 이어질 것이다. 업무강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긴다는 것은 노후 준비로도 이어진다. 노인이 비참함과 고통에서 멀어질수록 의료와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어든다. 물론 쓸모없는 노인 다 죽어라 하며 내팽개치는 경우 노인의 의료와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이야 줄어들겠지만 그들의 가족인 젊은 세대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모두를 트라우마와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보다는 노인이 행복한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보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출생율도 올라갈 것이다. 우리가 ‘내’가 아닌 모두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이유다.
물론, 나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발전의 방향은 사회주의에 있으며 대물림의 개념을 없애고 가족주의를 해체하고 인류가 생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인류가 살아가는 구간을 아주 일부로 제한하는 것이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거 못 볼 것 같으니 이런 미봉책이라도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