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만 많고 내용은 전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으어어
공미포 3016자, 공백포함 3974자, 단어 956개입니다.
길어서 접어놓습니다.
예전, 영민은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다. 헤매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최선의 길을 선택했고, 실패한 적이 없었다. 양친은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은 그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어린 동생이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시골의 고모할머니 집에 갔을 때였다. 생전 처음 간 곳에서 동생은 망설임 없이 길을 잃은 자신을 향해 똑바로 찾아온 그에게 동생은 물었다. 그는 웃었다. 손가락을 들어 길을 가리켰다.
“저기 까만 강아지 있는 거 보여?”
영민이 묻자 동생은 멀뚱히 손가락 끝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영민은 그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었다.
“남들한텐 비밀인데, 형한텐 길을 가르쳐주는 검은 개가 있어.”
동생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내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언제라도 찾아줄 수 있는 거야?”
“그래, 그 까만 강아지가 킁킁킁킁, 냄새를 맡아서 우리 정민이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야!”
“우와!”
“그래도 엄마아빠가 걱정하니까 엄마아빠선생님한테 꼭 붙어 다녀야 해.”
“멋있다! 왜 나한테는 그런 거 없어?”
“형한테만 있는 거야. 그리고 꼭 엄마아빠한테 붙어다닌다고 약속! 오늘처럼 막 다니기 없기!”
“엄마한테 말해야지!”
“비밀이라고 했잖아ㅋㅋㅋㅋ 손가락이나 잡아.”
영민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손가락을 감싸쥐는 작은 손은 언제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은 추석을 맞이하여 황금색으로 물들어가고 마른 흙길이 햇볕을 부드럽게 흩어놓았다. 길 주변의 풀들이 간지럽게 흔들렸다. 이따금 마른 콩이 타닥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검은 개의 안내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양친은 둘을 보자 여기 좀 보라고 소리를 지르며 꼭 끌어안았다. 영민은 행복했다. 그를 이끌어주던 검은 개는 그들을 한참을 보다 대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충격음이 울렸다. 타이어 마찰하는 소리가 찢어졌다.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동생의 머리 아래로 피가 흘러나와 뭉쳤다. 피웅덩이는 점점 더 커져서 동생의 머리보다도 훨씬 더 크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동생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동생은 어둠에 침식당해가고 있었다. 마치 천에 염색물이 들듯이 그렇게 어둠이 커져가, 결국 그림자가 되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영민은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하얀 병실에 새하얀 이불을 덮은 동생의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양친은 아무 말도 없었다. 시체를 앞에 두고 침묵이 그들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영민은 어깨를 움츠렸다.
“제 잘못이에요. 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양친은 아무 말도 없었다. 부정도 긍정도 없이 그저 동생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양친의 상처를 들여다 봤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탓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친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 동생이 싸늘한 시체가 되도록 방치한 것, 흔들리는 풀의 간지러움과 얼굴 한가득 머금던 웃음과 자신을 부르던 반가운 목소리를 내팽개친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동생의 곁을 지키는 양친 뒤에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문득 그는 자신의 손에 휴지가 들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병실과 같은 하얀색이었다. 그는 휴지를 풀기 시작했다. 휴지는 발치에 쌓이기 시작하더니 곧 병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점점 높이 쌓이기 시작했다. 영민은 계속해서 휴지를 풀었다. 계속, 계속, 계속해서 풀었다. 휴지는 마치 꽃처럼 그들 주변을 둘러쌌다. 영민은 휴지를 계속 풀었다. 양친도, 자신도, 병실 전체가 휴지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의 시체만은 선명하게 그대로 남았다. 마치 포장 상자의 충전재에 담긴 상품처럼 동생만이 선명하게 강조되었고, 그는 충전재에 완전히 잠겨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구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를 단죄할 수도 없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자신밖에 없었다. 길을 잃어 헤매면서도 영민은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깬 영민은 멍하니 버스 천장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멀리 있던 현실감각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있었다.
반대 차선에서 달리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망막을 찔렀다. 그 바람에 영민은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움직이자 사람들의 쌔근쌔근 잠든 숨소리와 히터의 온기, 피로에 찌든 사람들의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는 잠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버스 내부는 어두웠고, 사람들은 다들 잠들어 있었다. 심야라 고속도로에 차가 없는지 운전석에선 규정속도 위반을 알리는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버스는 아찔할 정도로 속력을 내고 있었다. 영민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이 싹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안 주무세요?”
통로 건너 옆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다. 아까의 고등학생이었다. 영민은 잠시 망설였다.
“충분히 잔 것 같아서. 너는 안 자?”
학생은 잠시 망설이다가 잠이 오지 않는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학생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영민은 그가 더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는 것인가 싶어 자신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첫인상도 그랬지만 착실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약간 곱슬기가 있는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하고 이 시간에 착실하게 교복을 입은 것도 그랬다. 교복은 약간 결벽적일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앉아 있는 자세 역시 그랬다. 어딘가 긴장된 듯 텐션이 있는 바른 자세였다. 고등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였는데, 그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단정함과 의젓함이 있었다. 현대판 왕자가 있으면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의 생각에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형은 어디로 가세요?”
더 말을 걸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영민은 조금 놀라며 대답했다.
“어, 집에 가는 거야. 제사거든.”
“힘드시겠네요. ...누구 제사예요?”
“동생 제사야. 6년 전에 세상을 떴거든.”
“아...”
소년은 애매한 소리를 내며 또 입을 다물었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영민은 적당히 말을 만들어낼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는 어디로 가니? 학생이 심야버스 타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혼자야?”
영민이 소년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운전석에서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기 때문이었다. 버스 앞엔 가드레일에 앞머리를 박은 승용차가 차선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버스는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영민의 머릿속에 승용차가 찌그러지고 탑승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처참함에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버스는 한참을 미끄러졌다. 누군가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고 누군가는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버스는 자리에 섰다.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라며 뒤에서 승객이 소리쳤다. 그 웅성거림에 영민은 눈을 떴다. 그들은 자동차를 들이받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영민은 자동차의 지근거리까지 버스가 달려들던 것을 보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창밖을 살펴보았다. 가드레일도 승용차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도로도 산도 들도 가로수도 없었다. 오로지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뒤에서 승객이 물었다. 사람들은 다들 창밖을 내다보거나 기사를 쳐다보거나 했다. 기사는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 잠시 핸들을 붙잡고 멍하니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백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뒤에 앉아 있던 승객들 중 세 명의 중년이 그를 채근했다.
“네... 잠시... 잠시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기사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비치되어 있던 손전등을 꺼내 들며 말했다. 앞문을 열고 버스 밖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발바닥으로 단단한 느낌이 전해지자, 그는 책임감을 갖고 버스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버스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만 버스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을 뿐이었다. 어둠,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나저나 일주일에 그림과 글을 함께 하려니 3000자 분량이 너무 많은 듯하여ㅠㅠㅠㅠ
공미포 2000자로 줄이면 안 될까요? ;ㅂ;
그렇게... 그렇게 하게 해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