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조금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ㅠㅠ
공미포 6154자
츠무기는 며칠 전에 만난 외할아버지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대충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애정어린 말을 했던 것 같았지만 거기에 애정은 없었다. 텅 빈 말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 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외가의 피를 이은 정통한 자식이었댔던가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든가 어머니는 여자고 행실이 불량해서 그럴 수 없다든가 츠무기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다든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문맥이 잘 이어지지도 않았거니와 자신에게 사랑과 승계를 말하면서도 어머니를 까내리는 것도 그랬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랐다.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간절하게. 더이상 생각이 자신을 좀먹지 않도록.
병원 정문을 지나면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학급위원장으로서 선생님께 부탁받은 일을 완수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신은 부탁받은 일을 완수하는 것에 집중하기만 하면 됐다. 어차피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차라리 생각을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나 하고 지금을 즐기는 게 현명한 길이었다. 책가방 속에 든 오늘의 읽을 거리를 생각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병실에 도착하자 만나야 할 사람이 보였다. 다인실이어서인지 침대에 앉아있거나 주변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들어가자마자 알 수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노래를 부르는 뒷모습은 아직 가냘프고 어딘가 위태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이 있었다. 츠무기는 그에게 걸어갔다. 노랫소리도 뒷모습도 츠무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도 그가 이렇게 시선을 끌었던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에이치 군♪”
“응? 으음, 으으으음... 넌 누구지?”
“너무해!? 잊지 말아주세요, 같은 반의 아오바예요!”
“아아... 아오비 츠무기 군, 맞지? 소박하지만 울림이 예쁜 이름이네.”
그, 텐쇼인 에이치의 맑은 얼굴이 작게 미소지었다. 마치 천사 같은 얼굴이었다. 츠무기도 웃었다. 마치 텅 빈 것 같은 자아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씩 흘렸다. 꽤나 무거운 이야기라 여겼는지 에이치는 ‘의외로 이상한 애’라고 말했다. 츠무기는 조금 들뜨는 기분을 느꼈다. 그가 자신을 “행복의 파랑새”라고 명명했을 때는 아마 좀 더 그랬을 것이었다. 학급위원장으로서 돌볼 보람이 있는 애였다. 그랬달까, 인상이 좋았다. 이름을 외워주진 못 했지만 그는 몸이 약해서 학교를 거의 나오지 못 했으니까. 오히려 건강해서 매일 학교에 나올 수 있었던 츠무기 자신이 그를 발견하지 못 했던 게 이상할 정도였다. 츠무기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분명 그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다시 만난 건 시일이 조금 지나 학교에서였다. 에이치가 팔목에 ‘에이치군 게이지’를 달고 병원과 집안을 설득해 퇴원을 했던 것이었다. 츠무기는 그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츠무기는 그의 열기에 놀랐다. 그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을 붙잡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이상을 도모했다. 학교의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엄마나 아빠나, 주변의 어른들과도 달랐다. 이런 자료를 구해와라, 저런 것들을 해달라 요구는 자주 있었지만 그것이 괴롭지는 않았다. 애당초 괴로움을 느끼지 못 하고 있었으니 이 표현은 적절치 않겠다. 그는 에이치의 계획에 참여하며 고양감을 느꼈다. 홀로 타오르는 고고하고 강한 불꽃 옆에서 그를 지키고 보좌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츠무기의 마음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황폐해진 밤의 정원 같았다. 나무도, 풀도, 나비도, 동물도,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조차도 없이 그저 싸늘한 밤공기와 멀리 떨어진 무수한 별들, 그리고 자신을 절대 돌아볼 리 없는 ‘엄마’가 달처럼 밤하늘에 걸려 있었다. 외로워서 별들에게 말을 걸면, 별들은 멀리서 답을 해줬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그에게 온 것이다.
정원의 중앙에서 츠무기는 불꽃을 끌어안았다. 불꽃의 온기로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 간질간질한 느낌을 그는 즐겼다. 불꽃 속의 이상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 그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에이치의 아름답고 창백한 얼굴에서, 푸른 눈을 형형히 빛내며 모양새 좋은 입술이 무언가를 획책하는 것을 볼 때면 때때로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자꾸만 아픈 그의 모든 것을 보호해주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사랑스러움을 감히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특별해지면 특별해질수록 더 선명해지고 강렬해지는 한밤의 꿈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꿈은 외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는 데서 시작해 아버지가 나타나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마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빙글빙글 도는 악몽 같았다. 꿈을 꾸고 나면 대체 왜 이런 꿈을 자꾸 꾸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벽을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 학교에선 에이치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위해, 그의 이상을 위해 행동하며 기쁨과 행복과 충만감을 쌓았다. 낮의 세계는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고통도 누군가의 추한 마음도, 혹은 집에서 불도 텔레비전도 끄고 빚쟁이가 찾아와도 없는 척 숨죽여야 하는 일도, 그 어떤 것도 그 반짝임에 흠집을 낼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함께 학교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에이치를 돕고, 지킬 수 있다는 경험이 차곡차곡 그의 텅 빈 자아에 쌓여갔다.
그는 행복했다. 도저히 집도 주변도 행복하다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만약 또다시 집이 빚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 신고를 한다 해도 상관 없었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 해도, 그에 가까운 감정의 이름을 붙이고서 에이치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는 언제고 행복할 터였다.
‘엄마, 나는 지금 행복해요.’
츠무기는 집에서 속눈썹을 떼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나도 행복해질 수 있었으니까, 엄마도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미소지었다. 말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말해도 분명 다다르지 못할 터였다. 언제고 어머니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으니까.
츠무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츠무기의 어머니는 닫힌 문을 흘끔 보고는 다시 화장대의 거울에 고개를 돌렸다.
사카사키 나츠메는 악보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이제 막 건네받은 “Switch”의 따끈따끈한 신곡 악보였다. 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꼬다가 풀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곡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좋은 곡이었다. 그리고 의도에도 맞을 것 같은 멜로디였다. 어떻게 할지도 계획은 세웠다. 그러나 ‘그래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수고와 리스크를 져야만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별것 아니라면 별 게 아니었지만 어째서 그를 위해 이런 것까지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적 갈등이 끝나질 않았다.
“어라? 나츠메 군, 곡을 받았나요?”
불쑥 게임연구실 문이 열리고 츠무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양반은 못 되는 사람이었다. 나츠메는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해야할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차라리 할일을 재빨리 끝내고 저 “선배”의 보디에 리버블로를 먹이는 편이 마음이 덜 울적할 터였다.
“이걸 봐줘. 그리고 가능하다면 선배가 임시로 가사를 붙여줬으면 좋겠는데.”
“헤에, 임시 가사요?”
나츠메가 악보를 내밀자 츠무기가 방 안으로 들어와 악보를 받아 들었다. 곡은 같은 멜로디가 변주되며 반복되는 후크송에 가까워 보였다.
“선배네 가족 앞에서 부를 노래니까 말이야.”
“네에에???”
츠무기가 놀라서 큰 소리를 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안경이 콧날의 중간까지 미끄러졌다. 언제 봐도 한심한 모습이었다. 나츠메는 또 한숨을 쉬었다.
“빚은 그 텐쇼인 에이치가 다 탕감해줬다며. 선배를 버리는 대신.”
“네에... 뭐, 그렇죠. 그렇지만 버렸다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 에이치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츠무기의 부연발언에 나츠메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슬며시 오른쪽 주먹을 단단하게 쥐자 츠무기는 폭력 반대를 외치며 나츠메의 왼쪽으로 이동했다. 폭력 반대를 외칠 거면서 맞을 소리는 왜 하는 걸까. 자신이 먼저 에이치의 이름을 꺼냈지만 그에겐 자신 앞에서 에이치를 두둔해선 안 됐다. 그 스스로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놓고선 뻔뻔스럽게 저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그를 볼 때마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아 스스로도 정리하기가 버거운데, 불에 기름을 붓고 있으니 그럴 때마다 이성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남의 마법에나 덜컥덜컥 걸려대는 멍청이가!
“사부~ 선배~ 여기 있나요~”
또다시 문이 열리고 이번엔 소라가 들어왔다. 그는 그러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츠무기와 나츠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소라가 방해했나요~?”
“아니, 소라, 얼른 들어와. 소라도 같이 들어야 겠지.”
나츠메의 말에 소라가 얼른 들어와 나츠메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츠무기도 소라의 옆, 그러니까 나츠메의 맞은 편에 앉았다. 좌탁 위에 악보를 두고 셋은 머리를 모았다.
“가계 빚이 다 탕감됐으니 지금은 선배도 안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겠지만, 또다시 빚이 쌓여서 빚쟁이가 우리 라이브에 쫓아오기라도 하면 대참사잖아?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없게 무슨 짓이든 해야지. 난 일단은 선배의 가족에게 선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인정하게 되는 방향으로 선배의 부모님을 설득할 생각이야.”
뿐만이 아니라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에도 그런 사태는 큰 문제가 된다. 최고 학년인 츠무기가 흔들려서는 Switch는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츠메는 그런 꼴을 두고 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여태까지 자식을 무시해왔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의 가능성을 보고 지출을 줄이며 그를 지원하게 한다니, 말이 쉽지 현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었다. 나츠메는 츠무기의 부모님께 마법을 걸고 여차하면 어머니의 이름도 동원해 설득할 생각이었지만 츠무기에게 자신의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듯 츠무기의 어머니에게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 하거나, 설득은 됐지만 쇼핑 중독을 고치지 못 한다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때는 그때대로 뭔가 대책을 세우겠지만, 최악의 경우엔 절연이라도 시키고 자신의 집으로 그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아하, 그래서 나한테 임시 가사를 써달라고 했던 것이었군요? 가족에게 할 말을 직접 쓰라고.”
“그래. 곡은 한 곡, 무대는 선배네 집 거실쯤 되겠네. 거기서 화려한 퍼포먼스는 무리일 테니 동작을 최소화하고 아카펠라로 가창 위주의 퍼포먼스를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생각해?”
“Huhu~☆ 행복의 마법을 걸어주는 것이로군요! 하루는 대찬성입니다~♪”
나츠메의 제안에 소라가 먼저 찬성을 표하고 나섰다. 츠무기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나츠메는 소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라는 똑똑하구나. 맞아, 행복한 존재는 중독되지 않아. 마약에도, 알콜에도, 폭력에도, 점괘에도, 종교에도 말야. 소라의 말이 정답일지도. 더구나 행복의 마법은 우리 유닛의 캐치프레이즈이자 특기이기도 하니까.”
나츠메와 소라는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었다. 둘의 눈빛에는 분명 애정과 행복이 비치고 있었다.츠무기는 그런 둘을 보고 악보를 손에 들었다.
“그럼 내가 이 곡에 가사를 붙이면 되는 거죠? 알았어요. 해볼게요.”
“응, 나는 가사가 없는 버전의 가이드를 녹음 해서 폰으로 보내줄 테니까.”
“Haha~☆ 사부는 선배를 정말 좋아해~☆”
츠무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루가 배를 내보이며 드러누웠다. 나츠메는 츠무기를 올려봤다.
“오자마자 가는 거야? 임무를 주길 잘했군.”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힘내서 빨리 쓸게요.”
그는 미소지었다. 그러나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그저 나츠메 자신이 느끼는 쓸쓸함을 그의 얼굴에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도 그가 에이치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 확인했으니 오늘은 이제 얼굴을 더 보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게임연구실을 나가는 츠무기의 뒷모습은 평소와 같은 듯도 다른 듯도 보였다.
“내가 있으니 선배가 없다고 너무 쓸쓸해 하지 말아요, 사부~ 게임이나 할까요?”
소라가 벌떡 일어나 게임 소프트를 골랐다. 나츠메는 웃었다. 하는 말에 상관없이 진심을 읽어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맞는 말이었다. 거짓말만 하는 자신에게 그는 이 학교 안에서 거의 유일한 이해자일지도 몰랐다. 츠무기 같은 사람보다 훨씬 소중하고 훨씬 친밀한 사람이었다. 쌓여있는 앙금 같은 것도 없었다. 소라가 함께 있는데 츠무기를 의식해서 쓸쓸함을 느낄 이유따윈 없었다.
“그래, 소라.”
“어쩔 수 없죠! 감정은 순식간에 바뀌기 힘든 거니까요! 소라는 이해합니다~☆ 사부는 정말 선배를 좋아하네요♪”
진실된 이해자이고 소중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가끔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나 츠무기가 있을 때는.
“헤에”
나츠메는 가사가 완성된 악보를 보면서 애매한 소리를 냈다.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이걸로 부모님을 설득할 건데 너무 단순하지 않아?”
나츠메의 질문에 츠무기는 곤란한 듯 미소지었다.
“역시 그걸론 안 될까요?”
“아니, 안 된다고 할 것까진 아니야. 선배가 생각해낸 것 치곤 괜찮다고 생각해.”
츠무기가 일방적으로 의견을 철회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자 나츠메는 급하게 의견을 냈다. 가사는 좋았다. 임시 가사라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작곡 의뢰비가 아까워 정식으로 공연하거나 앨범에 수록할 땐 제대로 다시 쓴 가사를 넣으려 했는데 그냥 이 가사를 쓰는 쪽으로 가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다.
“다행이네요. 저, 최선을 다했어요.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이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했어요. 그러니 저는 이걸로 갔으면 좋겠어요.”
츠무기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츠메는 눈을 내리깔았다. 교실 안에서 아케호시와 마코토와 호쿠토가 떠들썩하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들릴 정도로 발성도 발음도 목소리도 좋았다. 나츠메를 포함한 오기인들을 짓밟고서 뻔뻔스럽게 자신들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하던 그 때와 똑같이.
“알았어. 이걸로 연습하자. 연습실을 빌려둘 테니 악보를 소라 몫까지 복사해서 들고와줘.”
나츠메는 대답했다. 지울 수 없는 과거였다.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츠무기가 에이치의 사주를 받아 자신과 형들을 괴롭히도록 여론을 유도했던 것도, 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던 츠무기가 에이치에게 버림받을 때 무대 위에서 지었던 표정도, 자신이 버림받은 츠무기를 주워버린 것도. 어떻게 해도 텐쇼인 에이치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미묘한 패배감도 그랬다.
이런 볼썽사나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츠무기는 자주 그에게 본심을 말해달라 했지만, 그에겐 특히나 그럴 수 없었다.
츠무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는 말 따위,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츠무기는 자세를 가다듬고 앞에 앉은 부모님들을 바라봤다. 형은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했다. 어머니와, 어머니와 결혼한 남자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굳이 들어야 하냐며 은근히 앉기를 거부하던 어머니는 사카사키의 이름을 듣고서야 겨우 자리에 앉았다. 정말,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이 집에서 자신의 가치는 이 정도였다.
“어머니, 아버지, 꼭 제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유닛 Switch의 첫 관객이시니까요. 뿐만 아니라 이 곡은 츠무기 선배가 직접 가사를 붙인 곡이에요. 선배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나츠메의 멘트에 새아버지가 박수를 짝짝 쳤다. 어머니도 거기에 장단은 맞춰줬다. 정말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도,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준 나츠메도.
셋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핸드폰에서 전주가 나오고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엔 약하게 화음을 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