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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무기 과거날조. DV, 근친강간 주의.
공미포 10304자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내려다 봤다. 태어난 지 이제 몇 달 되지 않은 가냘픈 아이가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길게 웨이브진 머리가 아이의 얼굴을 간질였다. 아이는 잠깐 고개를 흔들었지만 다시 무방비하게 잠이 들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사랑스럽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쓸었다.
그녀는 그 손가락으로 아기의 목덜미를 가볍게 쥐었다.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남편은 잠들어 있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도 그는 꿈쩍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목을 꺾어버릴까. 아무리 출산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녀라도 이 아이를 죽이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시체 처리는? 수사는 어떻게 벗어나지? 그녀는 아이의 목을 잡은 채 고요히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없었다. 그녀는 아이에게서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애초에 낳는 게 아니었다. 중절해버릴 것을. 유산해버릴 것을. 왜 여태까지 끌어왔을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아이는 나와버렸고, 출생신고가 되어버렸고, 그녀가 낳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작은 용기의 부족으로 그녀는 세상에 ‘이것’을 내놓아버린 것이다. 낳아놓은 지금은 과거의 자신이 가소로워 그저 실소가 날 지경이었다. 도저히 감당도 못할 것을 내놓은 어리석음에 한탄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밀려오는 좌절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멋대로 흘렀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밤중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숨죽여 오열했다.
사카사키 나츠메는 스커트를 펄럭였다. 치마가 바지에 비해 편한지 불편한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입히니 입었고, 자신도 그 차림이 별로 싫지는 않았다. 딱히 좋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그 차림으로 은혜를 갚겠다며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는 아이돌 육성 학원에 억지로 다니게 된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 기량이 뛰어나단 이유로 이목이 주목되는 것도 싫었다. 이 동네의 극성 학부모들에게 완전히 ‘재능있는 여자애’로 낙인찍혀 이리저리 소개되고 “얘가 ‘그’ 사카사키냐”는 말을 듣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걸 못 하는 척하는 건 더 못 견뎠기에 가르쳐주면 또 해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지만 일단 시키면 했다. 그러면 또 역시 천재라는둥 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똑부러지고 재능있는 유치원생의 비극이었다.
나츠메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예쁜 얼굴과 재능 덕에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또래의 아이들도 나츠메 덕분에 잔뜩 들어왔다. 애정과 인정에 아쉬울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귀찮았다. 그들은 잠시도 나츠메를 가만 두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외동이라 그런지 아니면 또래보다 똑똑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더 많은 사람과 얘기를 하는 편이 차라리 훨씬 편했다. 그들은 아이스케키 같은 저급한 장난을 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끔 어린애 같은 짓을 무심코 저질렀을 때 “귀여워~” 하며 좋아해주는 것도 그랬다. 어쩌면 응석이 부리고 싶은 것뿐일지도 몰랐다.
그런 천성이다보니 그는 자신보다 몇 살쯤 많은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가끔 아이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아이가 있었다. 주로 ‘이상한 녀석’, ‘이상한 데서 화내는 녀석’, ‘싫은 녀석’, ‘시건방진 원장 아들’ 같은 걸로 명명되었다. 그를 싫어하는 아이는 초등 저학년부터 중학년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고학년쯤 되면 자신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이를 그렇게 정색하며 싫어하기가 좀 그런지 애둘러서 감정을 표현하곤 했지만 소수의 고학년 남자애들은 그에게 강렬한 혐오감을 내비쳤다. 나츠메는 그들에게 동조해 함께 뒷담을 하는 것도 유치하다고 생각해 말을 보태지는 않았지만 츠무기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지도 않았다. 애당초 얘기를 섞은 적도 별로 없었지만, 그 경험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받기 힘들었다.
분명 처음 봤을 땐 어머니와 처음 이 학원에 왔을 때였다. 원장님이 엄마와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하는 사이 ‘시건방진 원장 아들’은 도련님처럼 차려입고 우울한 얼굴로 원장의 옷을 붙잡고 서 있었다. 우울한 얼굴은 원장인 엄마의 얼굴을 빈틈없이 닮아서 아버지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원장은 대단한 미인이었고 그 아들도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 애가 작은 아이인가요?”
“아, 네. 츠무기라고 해요. 츠무기, 엄마 일해야 하니까 얼른 수업 들어가.”
츠무기라 소개된 아이는 엄마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원장은 당황하며 츠무기의 손을 벗겨냈다. 그리고 강사를 불러 츠무기를 교실로 데려가게 했다. 나츠메는 그 광경을 조금 기이하게 여기며 봤다. 초등학생은 되어 보이는데 어째서 저런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할까?
“아이가 사랑이 많네요.”
나츠메의 엄마가 웃으며 말하자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응석이 많은 것뿐이에요.”
나츠메는 원장의 아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데 자신보다도 더 응석쟁이라고. 아직 덜 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그의 모습을 봤을 땐 조금 다른 인상이었다. 학원 근처 도로 건너편에서 그를만났었다. 그의 형이, 아마 5학년쯤 되어 보였는데, 그가 몰두해서 읽던 책을 뺏아 들고 조롱했다. 츠무기는 책을 돌려달라며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깡총깡총 뛰었지만 2학년이 5학년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가 닳아 책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던 츠무기가 결국 “돌려줘!”라며 소리쳤다. 그때 형의 움직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돌려 달라고? 그럼 뺏아보든가.”
형은 빙글빙글 웃었다. 그리고 츠무기를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츠무기는 다시 형의 주변을 돌며 폴짝거렸다. 그러나 이번엔 그저 책을 들고 피하는 게 아니었다. 형은 츠무기를 책으로 때렸다. 츠무기가 달려들 때마다 때리고 또 때렸다. 나츠메는 조금 놀라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형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츠무기를 발로 찼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츠무기를 형은 계속해서 책으로 때렸다.
“뺏아 보라고. 왜 못 뺏아? 못 뺏는 네가 잘못이지. 안 그래?”
“하지마!”
보다 못한 나츠메가 소리를 질렀다. 떨렸지만 오기로라도 자리에 서서 노려봤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 사카사키 나츠메는 어딜 가든 관심을 받는 사람이었다. 마치 투명인간 같던 츠무기와는 달랐다. 형은 어른들의 시선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두고 보자는 말을 남겨놓은 건 아무래도 좋을 덤이었다. 나츠메는 츠무기에게 다가갔다.
“......”
나츠메가 손을 내밀었지만 츠무기는 무시했다. 그저 옷을 툭툭 털고 일어설 뿐이었다.
“아...”
츠무기가 가늘게 소리를 냈다. 넘어지면서 잘못됐는지 셔츠 단추가 하나 튿어져 있었다. 나츠메는 그 사이로 츠무기의 쇄골에 생긴 멍자국을 얼핏 보았다. 나츠메의 시선을 눈치챈 츠무기는 셔츠 깃을 모았다.
“넘어지면서 생긴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츠무기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엄마한테 가서 얘기하자!”
“하지마!”
츠무기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츠메는 영문을 모른 채 츠무기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책은 집에 가면 있을 거야. 나한테도 엄마 아빠가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단호한 거절의 말이었다. 나츠메는 이런 식으로 거절당해본 적이 없었다. 도움의 손길이면 더더욱 그랬다. 원래 갖고 있던 츠무기에 대한 인상을 배신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늦되고 어수룩하고 엄마나 찾는 응석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나의 도움을 거절하는 거야? 충격을 받은 나츠메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츠무기의 얼굴을 쳐다봤다. 츠무기는 시선을 모른 척한 채 걸음을 빨리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로는 주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학원 복도 너머에서 가끔 보는 정도였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때로 깜짝 놀랄 정도로 잔인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겐 끊임없이 매달렸다. 원장은 그럴 때마다 상냥한 말투로 그를 떼어냈다. 그래도 그는 또다시 매달리곤 했다.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끈질겼다. 엄마가 주술사 일을 하고 있을 땐 절대로 건들지 않는 나츠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면 듬뿍 사랑해줄 텐데. 저렇게 상냥하고 천사같은 엄마가 그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역시 나츠메도 츠무기를 좋게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끔 셔츠 사이로 보이던 멍자국이 생각날 때면 나츠메의 가슴을 콕콕 쑤셨다.
그리고 그 상태는 나츠메가 더이상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츠무기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이 읽기엔 두꺼운 책이었지만 츠무기에겐 상관이 없었다. 행복의 시간은 책의 두께와 비례했다.
글자는 좋았다. 활자를 읽는 동안은 다른 생각이 사라졌다. 아빠가 형을 때리는 것도, 형이 자신을 때리는 것도 잊을 수 있었다. 가끔 운이 좋으면 책을 읽고 있었던 덕에 주먹을 피할 수 있기도 했다. 가족 중 최약체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최근엔 그래도 엄마가 집에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있으면 가족들은 서로 덜 때렸다. 자신이 엄마에게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엄마에게 기대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엄마와의 연결을, 피로 이어진 연결을 믿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 어떤 할아버지가 츠무기에게 말을 걸어왔다. 츠무기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츠무기를 꽉 끌어안았다. 몇 번이고 자신이 츠무기의 외할아버지라고 말하던 그는 확실히 엄마를 닮아 있었다.
포옹의 온기에 당황한 츠무기는 할아버지를 집안으로 들였다. 외할아버지는 츠무기에게 이런저런 먹을 것과 선물을 주었다. 선물은 책이었다. 그는 츠무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인자한 얼굴로 맞장구 치고 자신의 이야기도 했다. 그는 상가를 몇 채나 가진 건물주였고, 나름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손주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얼마나 섭섭했는지,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를 말했다. 이전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 따뜻한 말들이었다. 츠무기는 외할아버지에게 홀딱 빠졌다.
돌아갈 때 외할아버지는 엄마 몰래 몇 번 오기로 약속했다. 엄마가 아직 어렸을 때 노는 학생들과 어울리더니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학기중에 남자친구 애를 임신하고 가출해서 멋대로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엄마와는 연이 일방적으로 끊겼지만 자신은 언제나 엄마와 가족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츠무기에게는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외할아버지가 가족으로서 돌봐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에겐 비밀로, 가끔 이렇게 집에 찾아와 선물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을 먹여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냐고 아주 점잖고 다정하게 물었다. 츠무기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랑을 주겠다는 사람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츠무기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인가 ‘외할아버지’가 오갔다. 츠무기는 외할아버지가 왔다 간 후엔 가족들이 모르게 흔적을 지우곤 했다. 그는 다정했다. 몇 번이고 츠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아이돌 육성학원에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곤 춤과 노래를 요청하곤 했다. 그리고 열성적으로 박수를 치고 기뻐해줬다. 책을 많이 읽는 것에 대해선 착실하고 머리가 좋다며 칭찬해줬다. ‘외할아버지’가 츠무기의 상처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랬다.
상처를 발견한 외할아버지는 분노했다. 옷 속의 상처까지 확인한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츠무기에게 엄마의 전화번호를 내놓으라고 을렀다. 츠무기는 겁을 먹었다. 이 비밀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외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비밀이었다. 울면서 넘어가 달라는 츠무기를 측은하게 바라보다 끌어안았다. 자신의 피가 이어진 아이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폭력에 노출되게 할 수 있냐며 한탄했다. 츠무기는 엄마 탓이 아니라며 울었다.
그날 저녁, 츠무기가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자 ‘외할아버지’는 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려서 만났다.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앞에 두고 경직되었다. 딱딱한 얼굴을 하고 온 몸을 긴장시켜서 소리쳤다. 참견하지 마라, 무슨 낯짝으로 여기 찾아왔느냐 같은 고성이 집앞에서 오갔다. 츠무기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귀를 막았다. 엄마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키는 기분이었다. 수치심에 눈물이 흘렀다.
고성이 잦아들고 집으로 들어온 엄마는 조용히 이사를 얘기했다. 아빠는 반발했지만 엄마는 무시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서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츠무기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엄마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엄마...”
엄마는 답이 없었다. 그저 그를 외면한 채 캐리어에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이 때린다고 내가 말한 게 아니에요. 멍이 아직 낫질 않아서... 멍 보고 그랬어요.”
“......”
엄마는 접어 정리한 옷을 캐리어에 던졌다. 다분히 분노가 묻어나는 행동이었다.
“엄마, 엄마, 형이 날 때려요. 날 봐요, 엄마. 나를 때린다고요.”
“...... 그래서, 외할아버지한테 갈래?”
엄마는 차갑게 물었다. 분노를 압축한 단단한 목소리였다. 츠무기는 엄마의 발목에 매달렸다.
“아뇨, 엄마, 버리지 마요! 날 버리지 마요! 엄마!”
츠무기는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었다. 엄마는 옷을 다 챙기자 츠무기를 내팽개치고 거실로 나갔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향해 “이사갈 집을 알아보면 돌아오겠다.”라고 선언하곤 집을 나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의 일상은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을 기준으로 돌아갔다. 엄마를 찾아 아빠도 형도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가 이사갈 집을 찾으면 돌아오겠거니 하며 포기했다. 형은 익숙지 않은 집안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화풀이가 더 잦아졌다. 아빠는 엄마가 없어도 종교를 들고 오는 사람이 없어져서인지 속이 더 편해졌다고 했다. 츠무기는 상처투성이 몸으로 매일 빨래를 돌리고 집을 쓸고 닦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빠가 형을 심하게 때렸다. 다른 일도 아닌 동생을 왜 자꾸 때리냔 것이었다. 집에 있던 대걸레가 부러지고 형의 허벅지엔 커다랗게 피멍이 들었다. 츠무기는 안절부절못했다. 이제부터 형이 또 때리면 말하라 했지만 아빠가 자기 편이 되었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긴 했지만 아빠라고 그렇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형이 조금만 잘못해도 폭력을 휘둘렀고 츠무기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때로 가벼운 체벌도 있었다. 다행히 크게 맞은 적은 없었지만 언젠가 더 크면 형이 맞는 것처럼 자신도 맞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런 아빠가 자신을 감싸줬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맞은 형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츠무기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계속 불렀다.
형은 이후로 몇 번은 “어디 아빠한테 말해봐”라며 때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아빠에게 사정없이 맞았다. 바닥을 뒹굴고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그리고 형은 조용해졌다. 놀랍도록 입을 꾹 다물고 얌전하게 행동했다. 이제 츠무기는 맞지 않았다. 그 사실에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아빠에게 약간의 호감조차 느껴질 정도였다.
형에게 맞은 멍이 희미해져갈 때쯤 아빠가 방을 찾아왔다. 월차를 써서 회사에 가지 않은 날이었다. 형은 학교에 가 있었다. 츠무기는 학교가 일찍 마친 덕에 집에 와 있었다. 아빠는 츠무기에게 오늘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기뻐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아빠가 대화를 하자며 방으로 들어왔다. 츠무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빠를 맞이했다.
아빠는 츠무기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짓을 츠무기에게 했다. 츠무기는 저항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생이 성인 남성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빠는 츠무기를 강간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아빠는 츠무기를 찾았다. 츠무기는 강간당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엄마가 왔더라면, 엄마가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츠무기는 몸서리치며 울었다. 나쁜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츠무기의 방을 찾은 형이 아빠가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콘돔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게 뭐야?” 형이 물었지만 츠무기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걸레새끼가!” 형은 분노했고, 츠무기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그날도 아빠는 형을 때렸지만, 형은 츠무기를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도 츠무기를 강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집은 지옥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아빠가 월차를 써서 집에 있는 날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3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아빠는 그날도 츠무기를 찾았다. 츠무기는 거의 체념하고 있었다. 괴로워하고 울부짖고 저항한들 아무도 들어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저 아빠를 기쁘게 해줄 뿐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게 된 이유 중엔 형도 있었다. 형은 집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상기시키지 않도록 얌전히 입 다물고 티 내지 말라고 협박하며, 간혹 자신이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츠무기를 때리고 괴롭히며 죽으라고 저주할 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이제 더 찾아오지 않았다. 희망이 있다면 엄마, 엄마뿐이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날 터였다.
아빠의 호흡이 많이 거칠어졌을 때였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츠무기는 그쪽을 쳐다보았다. 엄마가 있었다. 마치 기적 같았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이 순간에 엄마가 나타난 것이었다! 츠무기는 엄마를 간절하게 올려봤다. 엄마가 나타났으니 이 모든 상황이 종결시키고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줄 터였다. 희망이 차올랐다.
그러나 희망이 무색하게 엄마의 표정은 얼음장 같았다. 텅 빈 눈동자는 아빠와 츠무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엄마는 침착한 동작으로 다시 문을 닫았다. 츠무기와 아빠를 단 둘이 방치한 채 그녀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캐리어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가갔다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곧 부엌에서 물을 틀고 식기를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밥을 차리고 있었다.
츠무기의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그러졌을지언정 어느 정도 형태는 띠고 있던 마음이, 희망이 부서져내렸다. 자기 몸 안에 성기를 억지로 밀어넣었던 아빠가 황급히 빼내고 옷을 추스리는 광경 역시 그를 부수는 데 일조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자신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츠무기는 부서져내린 마음 조각들 사이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엄마가 아빠에게 이혼장을 내민 것은 그로부터 2개월 후였다.
“엄마, 날 지켜주려고 이혼한 거예요?”
츠무기가 물었다. 아직 이삿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방에서, 스탠드만 켠 채 머리를 싸매고 앉은 엄마의 뒷모습이 생경했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길고 웨이브 진 머리를 어깨 뒤로 넘겨댔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어깨 앞으로 흘러내렸다.
“그럴 리가 없잖니.”
엄마가 대답했다. 츠무기는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는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아빠의 이혼도, 형과의 이별도, 집이 좁아진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젠 형에게 맞았던 것도 아빠에게 강간당했던 것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엄마의 무관심도 이젠 당연한 게 되었다. 아마 다른 이유로 이혼했겠지. 아들이 강간당한 것보단 아들을 강간하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게 싫어서 이혼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했다. 형에게 아무리 맞아도 양친은 모른 척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은 쭉 외면해왔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였다.
츠무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위기에서 구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자신에겐 그럴 가치가 없었다. 구제할 길 없는 불행이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책을 들었다.
책은 좋았다.
책만이 자신을 구제해줬다.
츠무기의 엄마는 루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일과를 보내고 문제 없는 가정을 연출한다. 가정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눈치채여서는 안 된다. 비록 재산이 탕진되고 때때로 정신이 휘청여도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됐다. 그녀는 가슴 속 깊이 묻은 자신의 죄를 들킬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러다 자신을 완전히 잃을 것 같을 땐 종교에 몸을 던졌다. 속죄를 위해,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추악한 죄를 씻어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오열하고 반성하고 속죄하고, 그렇게 죽도록 기도해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면 죄의 증거가 형태를 갖고 자신을 맞이했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듯, 그렇게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듯,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을 비웃는 듯,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듯, 집안에서 바깥에서 자신을 끈질기게 쫓아오며 “엄마”라 불러댔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버지를 보고 집에서 뛰쳐나온 지 3개월쯤 되었을 것이었다. 끊임없이 죄를 씻어내고 이사갈 집도 알아봤으니 이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정상적인 가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완벽하게, 남 보기 부끄럽지 않은 가정을 만들어야만 했다.
날이 많이 더워졌다. 벌써 8월이었던가. 바깥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무더운데 집안엔 온통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여름의 뙤악볕 아래서 보는 집안은 마치 마굴 같았다. 다른 집들도 이럴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머, 츠무기 엄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웃집에 사는 첫째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아이를 키우는 여자였다. 그녀는 항상 단정한 차림새에 화장도 엷게만 하고 다니는 ‘모범적인 엄마’의 전형 같아 보였다.
“웬 캐리어야? 어디 다녀왔어?”
“출장을 조금...”
거짓말을 했다. 옆집 여자는 아마도 좋은 사람이었다. 첫째를 낳고 신세를 많이 졌었다. 먹을 것도 챙겨주고 아이를 돌보는 방법이나 이런저런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필요하다며, 친척이 적은 아이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친정과의 관계 회복을 종용했던 사람이기도 했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결여도, 그래서 발생하는 사회성 결여도 모두 ‘비정상’이라며, 정상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선 친정과 꼭 관계를 회복해야만 한다고 했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직장에서도, 장 보러 간 곳에서도, 심지어 친구나 남편조차도 다들 똘똘 뭉쳐 자신에게 “화해”를 종용했다. 자식의 도리를 위해.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를 생각해서. 아이를 위해.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은 본인의 잘못이었나. 이제 나이도 들고 애도 낳아서 성적 매력이 줄었으니 괜찮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한 자신의 잘못이 가장 컸을지도 몰랐다.
“최근 애 비명소리나 소리지르는 게 자주 들려. 첫째가 둘째를 좀 괴롭히는 것 같은데 주의 좀 줘.”
“...... 제가 좀 장기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동안 애 아빠한텐 이야기 해봤어요?”
“아니, 육아는 역시 엄마 몫이잖아? 엄마가 없는 동안 애들이 꾀죄죄해졌다구~”
그래요. 그렇게 날 괴롭혀요. 그녀는 멍하니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자신에게 화해를 종용한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해왔는지 몰랐다.
“네, 죄송합니다.”
설마 8년 만에 화해를 위해 갔다가 다시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게 될 줄은, 그리고 그 한 번으로 설마 아이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를 가지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발견도 늦었다. 발견이 늦었던 만큼 중절의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 했다. 낳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꼭 닮아 있었다.
자신도 설마 했었다. 자신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옆집 사람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남편에게, 친구들에게 원망을 품어봤자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당하지 않은 것을 자신만 당한 것 같아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강간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다. 애가 얼마나 발랑 까졌으면. 그랬다. 남자들은, 아버지들은 원래 강간을 하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자가 뭔가 잘못을 해서 트리거를 누르면 그들은 갑자기 강간마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선량한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트리거를 누른 여자들의 잘못이었다. 지나치게 색기가 넘치거나 발랑 까지거나 짧은 치마를 입어서 섹스 어필을 하거나 교복을 입거나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거나 나이에 비해 성숙하거나. 그녀의 잘못은 ‘너무 예뻐서’, ‘나이에 비해 성숙해서’, ‘아빠를 닮아서’였다. 저항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근친 성관계를 여러 번 가졌고, 그 씻을 수 없는 죄는 증거가 되어 나왔다. 가족들은 그 아이에게 ‘츠무기’란 이름을 붙여줬다.
그녀는 현관으로 통하는 문고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츠무기를 두고 자신이 생물학적 아버지이니 아이를 볼 권리가 있다고 치근거렸다. 딸만 있는 집에 대를 이을 아들이 생겼으니 얼마나 경사스럽냐는 소리도 했다. 과연 그가 인간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주제에 집밖에선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녀는 지나가다가도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교하는 소릴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표정을 잘 관리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에게 근친강간이란 죄를 짓게 하다니, 초등학생 시절의 자신은 얼마나 나쁜 년인가.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게 그런 것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이날까지 살아온 것이 기적 같고 저주 같았다.
거실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은 조용했다. 신발은 작은 아이의 것과 남편의 것 둘 다 있었지만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아니, 작은 아이의 방에서 불길하게 억눌린 소리가 잠깐 울렸다. 그녀는 불안한 가슴을 안고 방문으로 다가갔다. 문앞에선 안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설마.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아이를 강간하는 장면을 정면으로 목도했다. 아이는 망가지고 있었다. 죄악의 증거이자 과거의 자신이 거기 억눌려 숨도 못 쉬고 있었다. 남편은 그걸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집안에서 자신의 과거가 재현되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완벽한 가정을 만들 준비가 다 되었는데.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는데. 지주님을 마음의 지지로 삼아 겨우 현실을 견딜 준비가 되었는데. 그녀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그녀의 어머니처럼. 이럴 땐 루틴이 중요했다. 평소 하던 것을 하면서 자신을 돌봐야만 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밥이라도 지으면 제정신이 돌아올까? 평소 집안일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남편이 처음으로 고마워진 순간이었다.
이혼할 때 남편은 그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큰아이는 남편에게 맡기고 가장 보기 싫어하는 작은 아이를 선택한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이제 더 좁은 집에서 더 자주, 다른 가족 없이 자신의 죄와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이래봤자 어차피 과거의 자신도 아이도 구할 수 없고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데. 그 아이, 츠무기는 끔찍하리만치 불쌍하게도 느껴졌고 끝없이 혐오스럽게도 느껴졌다. 사랑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괴로움과 불안과 측은함과 증오와 죄책감과 사랑스러움 사이에서 그녀가 택해왔던 것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선택할 것은 외면과 무시였다. 마치 그 죄가 거기 없는 듯. 자신은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모른 척하고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더이상 죄악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겨워지면 주지를 찾아갔다. 일그러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행운을 부르는 항아리 같은 건 기본이었다. 이런 거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버거운 운명이 어떻게든 바뀔 수 있도록.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돈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