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포 2678
그는 겁을 먹었다. 어머니가 죽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지정해준 “사람”이 저기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어머니”와는 그 힘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어머니”의 힘은 금기(禁忌)였다면 그의 힘은 건설이었다. 설계하고 만들어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살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지정자를 놔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가 또다시 실패할 경우 아이만 만들어지면 그를 죽이겠다고 그를 협박했다. 실제로 그를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는 지극히 쉽게 “어머니”에게 살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어머니”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두 번 목격했다. 그녀는 그 일을 힘도 들이지 않고 해치웠다. 이미 그녀의 금기에 묶여 갈 수 있는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심지어 말하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어머니”의 힘은 금기(禁忌)였다. 범위를 정해서 무엇이든 상대방의 행위를 금할 수 있었다. 예컨대 그에게 내려진 어머니의 금기는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에게서 10km 이상 벗어나지 말 것’,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말 것’, ‘어머니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집안 이야기를 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 것’과 같은 속박에 가두기 위한 것들이었다. 다만 사람을 죽일 때는 조금 다른 것을 금지했다. 먹지 말 것, 마시지 말 것, 잠을 자지 말 것, 숨을 쉬지 말 것과 같은 것을 주문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들은 어머니가 상대방에게 직접 말을 함으로써 적용되는 속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방식에 싫증이 났는지 그에게 자신의 일을 맡겼다. 그는 상대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 막혀왔다.
그는 벌써 목표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목표자는 중년 남자로, 크고 화려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소파는 어두운 갈색의, 소유자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1인용 소파였다. 목표자가 입고 있는 나이트 가운의 재질도, 그의 뒤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과시용 진열장도 그랬다. 무거워 보이는 탁자도, 그 위에 얹힌 싱싱한 꽃도 그가 얼마나 사람을 부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거기 둘러싸인 배 나온 중년 남성은 그다지 위압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목표자를 향해 다가갔다.
“누구야!!”
빛에 그의 모습이 노출되자 목표자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는 또다시 덜컥 겁을 먹고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목표자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느린 걸음으로 벽난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을 봤다. 벽난로에는 격조있고 무거워 보이는 긴 불쏘시개가 있었다. 그 옆에는 골프채가 있었다. 어느 것을 골라 들까? 어느 것을 골라 들어야 좀 덜 잔인한 결과가 나올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표자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했다.
“어, 보아하니 아직 어린 나이 같은데,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왔어? 응? 그 나이에 벌써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오고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래? 뭐하러 왔어? 도둑질 하러 왔어?”
목표자는 골프채를 잡아 들었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목표자는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풀었다.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인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움직임에는 자신감이 깃들었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도둑질 아니에요. 사장님 오늘 여기 있는 줄 알고 왔어요. 성매매 하실 때는 여기서 몰래 하신다면서요.”
아는 사람은 아는 것 같지만. 그는 뒷말을 삼켰다. 목표자가 선량한 사람이 아니란 게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아쉽게도 다 찍혀버렸네요. 내일 아침이면 언론에 쫙 퍼질 거예요. 놀라실까봐 미리 알려드리는 거예요.”
“어! 야!! 잠깐만!!”
자그만 달빛에도 날카로운 빛을 내는 골프채가 무색하게 목표자는 얼빠진 얼굴을 했다. 뒤통수를 사정없이 얻어맞은 표정으로 그에게로 다가갔다.
“잠깐만, 얼마를 원해?! 얼마면 되겠어?!”
목표자가 점점 거리를 좁히자 그는 “문을 열었다”.
목표자는 그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쫓아왔고 그는 점점 더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아예 등을 돌리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중년 남자가 자신을 쫓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목표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달려갔다. 그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야!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숨이 차는지 목표자의 숨소리며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뭔가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그는 목표자의 아둔함에 혀를 찼다.
“야, 이상하잖아!! 어디야!!... 여기 어디야!! 야, 빨리 말해!!”
목표자가 계속 그를 쫓아 달리며 소리쳤다. 그는 뚱뚱한 중년 남성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렸다.
여기는 현실과 다른 공간이었다. 인간이 따로 불빛을 만들어 비추지 않는 한 빛 한 점 없는 곳이었고, 인간의 소음이 없는 곳이었다. 우주와 같은 침묵의 공간이었고 절대적인 어둠의 공간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그렇게 오해되기 쉬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작은 소음들이 있었다. 멀리서 눈 먼 거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있었고, 의미 없는 벼룩들이 움찔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더할나위 없는 평화로운 어둠의 공간이었다. 거의 무(無)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거기서 그는 그 이외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과 술래잡기 중이었다. 그는 조금 신이 났다.
목표자는 이미 체력이 지쳐 있었다. 다만 앞서 가는 자를 놓치면 이 이질적인 공간에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을 힘을 다해 쫓아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뜀박질에 여유가 생긴 탓에 이것저것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먼저는 그의 발걸음 따라 꽃이 피었다. 흙길도 없는 곳에 꽃만 피고 지었다. 그러다 가로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눈길이 닿는 곳에 불이 켜진 편의점도 만들어 올렸다. 그러고 나자 그는 도로를 만들었다. 상수리 나무를 규칙적인 배열로 만들어 올리고 나지막한 상가나 집들도 만들어 올렸다. 다만 밤이니까 불은 꺼뒀다. 그들은 어느 샌가 8차선 대로를 뛰고 있었다. 마치 손꼽히는 명연주자들과 함께 공연하는 지휘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신이 났고, 8차선의 끝에는 학교가 나타났다. 활짝 열린 밤의 교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목표자도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신관까지 건너 학교 뒷문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신관의 문을 잠가둔 것은 덤이었다. 그는 통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울부짖는 목표자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치만 지금은 안 죽었잖아요. 모든 것이 정리될 때까지 여기서... 요.”
목표자는 유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그는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아요. 눈 먼 거인들이 올지도 몰라요! 그들은 소음을 싫어하니까... 기껏 죽을 위기에서 구해준 생명 아깝게 버리지 말아요.”
그는 목표자를 학교 안에 버려두고 학교 밖으로 나가 다시 “문을 열었다.”
열린 곳은 자신의 집 근처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슬픈 눈으로 목표자를 흘긋 본 후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목표자는 계속 울부짖었다. 그러나 곧 그는 조용해졌다. 학교 안으로 누군가 들어와 그의 머리를 깨부쉈기 때문이었다.
뒷문엔 핏자국이 낭자하게 남았다. 그러나 닦아줄 사람은 없었다. 학교는 그저 다음 사람이 들어오길 기다릴 뿐이었다.